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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상전벽해,격세지감이다. 오는 8일 개막하는 202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에 토미 에드먼(27)이 출전하기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주전 내야수로 뛰고 있는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5세 때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성을 딴 곽현수라는 한국 이름도 있다. 국적 외에도 부모의 혈통에 따라 국가대표 자격을 부여하는 WBC 대회 특유의 규정에 따라 한국 대표팀에 합류했다.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야구에서 미국 국적의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게 된 건 기념비적인 일이다.

민족 순혈주의는 한동안 한국 사회를 강하게 지배한 이데올로기다. 왜 유독 한국은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적 관념에 목을 매는 것일까. 찬찬히 뜯어보면 민족주의라는 피의 순수성에 우리가 집착하는 이유는 굴곡진 역사가 반영된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한 말, 이리떼처럼 몰려든 제국주의 열강의 야욕에 국내 정치세력은 힘을 모아 대항하지 못하고 사분오열로 찢어졌다. 이게 바로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비정상적으로 강화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요동치는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국내 정치세력은 다양한 정파적 이해관계로 분열했다. 이념, 종교,정치의 다양성 속에 친일 개화파, 친중 위정척사파, 친미 기독교파,친소 공산주의파,민족주의파 등 대략 5개의 다양한 세력으로 갈라졌다. 특히 일제강점기이후 각 정파들은 독립이라는 현실적 이유 때문인지 하나같이 민족주의를 접점으로 삼아 유난히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치적 토양은 민족주의를 과도하게 뿌리내리게 했다.

사실 북방 유목민족을 겨레의 시원으로 삼는 우리는 유목민의 특성상 예로부터 다민족국가로 보는 견해가 오히려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근현대사의 어두운 질곡은 민족 순혈주의를 운명의 자석처럼 끌어당기도록 했던 것 같다. 토미 에드먼이 WBC 한국대표로 승선한 사실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단초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가장 인기있는 야구 대표팀에 이방인이 가세한 것도 그렇지만 야구의 최고봉인 메이저리거가 태극마크를 달겠다고 선뜻 나선 건 한국 야구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뿌듯하다. 에드먼은 2012년 ML 내셔널리그 2루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실력파 빅리거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스포츠에서 다민족 개방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적으로 민족 순혈주의를 사회전면에 앞세우는 건 궁벽한 처지에서 공동체의 의식을 적극적으로 동원할 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주의가 적극적으로 동원된 사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세계 역사를 돌이켜봐도 그렇다. 독일의 나치즘,일본의 군국주의 등도 모두 자본주의 후발주자들이 자국의 민족주의를 자극,선동한 결과라는 데 꼬리표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욱이 광포한 그 힘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폭력성으로 폭발하기도 했다. 물론 민족주의가 적절한 균형감각을 유지한다면 공동체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겠지만 그 선을 조금이라도 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민족주의가 광기와 폭력성으로 변질될 때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방은 자신감의 표현이다. 분리와 단절,그리고 배제로 대표되는 닫힌 사회는 글로벌 중심국가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글로벌 사회의 중심국가로 진입한 한국으로선 이젠 달라질 필요가 있다. 다민족 개방사회는 앞으로 한국 사회가 지향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국가 역량의 기초를 국민이라고 봤을 때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합계 출산율의 저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결국 한국이 인구급감이라는 사회적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선 다민족 개방사회가 돌파구가 될 수밖에 없다. 다민족 개방사회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다민족사회에 내재할 수밖에 없는 갈등과 파열음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용한 기제가 바로 스포츠가 아닐까 싶다. 공동체의 유지는 정치와 이념이 아니라 정서적 공감대의 형성이라는 지적은 귀담아둘 만하다. 정서적 공감,이는 스포츠가 지닌 숨은 힘이다. WBC에서 김하성과 짝을 이뤄 키스톤플레이를 펼칠 토미 에드먼의 활약이 기대된다. 스포츠를 통해 체감하는 한국 사회의 변화,다민족 개방사회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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