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하은기자] 투표결과 조작으로 시청자를 기만한 PD를 재입사 시킨 방송사. 그 진정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어른들의 욕심에 아이들만 상처 입은 사건이었다. 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 엑스원까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리즈로 데뷔의 꿈을 이룬 이들 역시 방송사와 제작진, 기획사의 돈벌이에 희생된 건 마찬가지다.

‘조작돌’이라는 낙인에 엑스원은 결국 활동도 마치지 못하고 해체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 건 어른들이지만 3년의 시간동안 꿈많은 아이들만 비난의 총알받이가 됐다. 그런데 정작 기회를 빼앗은 이들이 다시 기회를 달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조작 방송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안준영 PD와 김용범 총괄 프로듀서(CP)를 엠넷(Mnet)이 다시 품었다. 안 PD와 김 CP는 ‘프로듀스 101’ 시리즈 생방송 경연에서 시청자 유료 문자 투표 결과를 조작해 특정 후보자에게 혜택을 준 혐의로 각각 징역 2년과 1년8개월을 선고받았다.

안 PD는 연예기획사 관계자들로부터 40여차례에 걸쳐 4000만원 상당의 유흥업소 접대를 받은 혐의까지 더해져, 2021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3700만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시청자를 속여 실형까지 받은 이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됐다. 안 PD는 엠넷에서 ‘슈퍼스타K2’(2010)를 시작으로 ‘댄싱9’(2013·2014) 시리즈, ‘프로듀스’(2017·2018·2019) 시리즈 등을 연출해왔으며 지난해 퇴사했다.

안 PD의 재입사가 알려진 3일 엠넷 측은 “안 PD가 지난 과오에 대한 처절한 반성, 엠넷과 개인의 신뢰 회복을 위해 역할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의지를 고려하여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엠넷은 지난해 김 CP도 복귀시킨 바 있다. 당시 엠넷은 “김 CP가 ‘회사와 사회에 끼친 피해를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해 수용했다”고 해명했다. 현재 김 CP는 CJ ENM의 글로벌 프로젝트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은 당연히 냉담하다. 앞선 공판에서 재판부 역시 “이번 범행으로 방송 프로그램의 공정성이 현저하게 훼손됐고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습생들과 시청자들을 농락하는 결과가 생겼다”고 사건의 중대함을 지적했다.

하지만 불과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두 사람의 복직에 팬들 역시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게다가 안 PD는 신규 콘텐츠까지 기획 예정으로 알려지며 논란에 기름을 붓고 있다.

두 사람의 복귀로 시청자의 신뢰가 기반인 방송사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엠넷을 운영하는 CJ ENM의 허민회 대표는 2020년 7월 이 사건과 관련해 “해당 프로그램으로 얻은 수익을 모두 내놓겠다”며 “순위 조작으로 피해를 본 연습생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보상하겠다”고 고개 숙여 대국민 사과를 했다.

또한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이후 두 사람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연다고 했지만, “징계 조치까지 다 마무리됐다”는 설명 뿐 구체적인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고 이들은 해고를 면했다.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데뷔조가 결정돼 ‘국민 프로듀서’란 말로 홍보하며 유료 문자투표로 부당 이익을 취하고, 무려 ‘프로듀스 101’ 시즌 1~4 참가자 순위를 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임의로 조작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그들이 어떤 징계를 받았고, 왜 두 사람의 재기를 지켜봐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다.

‘프로듀스 101’ 투표 조작 사건은 우후죽순 생겨나던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에 많은 변화를 안겼다. 해당 논란 이후 출범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늘 공정성과 정확성에 대한 의심을 받았다.

대중과 팬들은 더욱 감시의 눈을 밝혔고, 제작진들 역시 이미 무너진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 투표의 공정성을 담보하려 현재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만 과거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법의 심판을 받았으니 다 괜찮다는 걸까. ‘프로듀스 101’ 시리즈로 탄생한 프로젝트 팀 수익금의 절반 가까이를 CJ ENM이 가져가는 구조에서 투표 조작 사건을 PD 한두 명의 개인적인 비리로 보기는 힘들다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CJ ENM과 엠넷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책임감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촬영하는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낸 연습생도, 경연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연습생도, 자기는 당연히 될 거라고 믿었던 연습생도 없었다. 소규모 회사의 아이들은 그 실낱같은 희망에 투표마다 가슴 졸이고 악플에 울었으며 1초 방송 분량에 웃었다.”

투표 조작 의혹이 터진 후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출연한 한 연습생이 밝힌 심경이다. 안 PD가 했다는 ‘처절한 반성’과 ‘간절한 의지’. 엠넷이 ‘기회’를 주고 싶다는 안 PD는 그토록 처절하고 간절했던 수많은 연습생들의 꿈을 박탈시킨 장본인이다.

어른들의 알력 싸움 속에서 절대적인 ‘을(乙)’일 수밖에 없는 10대·20대의 아이들은 순위가 뒤바뀌고, 데뷔조에서 탈락한 뒤 여전히 그때 박탈당한 기회를 다시 얻지 못하고 있다. 누구와는 달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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