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6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50년전 서울, 수줍음으로 양볼을 발그레 물들인 처녀 총각 수십명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알아가며 짝을 찾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른 바 합동 맞선 모임. ‘선데이서울’ 244호( 1973년 6월 17일)는 서울의 새 풍습으로 합동 맞선 유행을 기획기사로 내보냈다.

저명한 화가 K씨. 주변에 결혼 적령기를 맞은 제자들, 친구의 아들·딸들 18명을 자세한 초대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개인 자격으로 초대했다. 딸기 먹으러 가자는 친구 따라나섰다가 합동 맞선자리에 온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아름다운 속임수(?)였고 즐거웠다고 당사자는 말했다. 이런 엉뚱한 기회로 뜻밖에 좋은 상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하고 있었다.

한 여성단체 주부클럽연합회가 주최한 청춘남녀의 합동맞선. 남녀 각 19명의 맞선자리는 노래와 게임 등으로 서먹서먹함을 풀고 서로를 알아가도록 했다. 총각들 직업은 의사, 대학 강사, 기업체 중견 사원, 은행원, 법관 후보자(사법시험 합격자) 등 누구나 신랑감으로 좋아할 만한 엘리트였다. 처녀들도 재산이나 학벌, 모두 중류 이상의 좋은 집안 규수였다.

주부클럽연합회가 마련한 합동 맞선에서 커플 매칭의 주도권은 남자에게 있었다. 행사 말미 총각들이 마음에 드는 아가씨 번호를 자신의 이름과 함께 내도록 했다.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처녀들은 선택의 대상이었고, 선택권은 오롯이 총각들에게 주어졌다. 참 불공평했다.

상대를 만날 기회나 시간이 없거나 인연을 만나지 못한 처녀, 총각을 위해 멍석을 깔아주었던 50년 전 합동 맞선은 요즘의 단체 미팅과 다르지 않다. 사실, 이런 합동 맞선은 배필을 찾는 방식의 하나로 지금도 더러 있다.

합동 맞선이 있기 전까지는 1대1 맞선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고 또 대세였다. 그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부모가 정해주는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옛날에는 정작 결혼 당사자인 본인 의사가 무시되는 결혼이 흔했다.

그래도 50년 전, 그 무렵은 맞선을 통해 당사자에게도 선택권이 주어졌다니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였다. 당시 1대1 맞선 풍속도는 대략 이렇다. 첫 만남은 보통 다방이나 호텔 커피숍에서 이뤄졌다. 양쪽을 연결한 중매자는 서로를 소개한 후 자리를 비켜준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서로를 탐색하는 만남을 이어간다.

합동 맞선도 여러 남녀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일 뿐 형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엄청난 규모가 만들어낸 다양한 선택지 덕분에 시중에 화제가 됐고, 참가자들도 호기심과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만남과 교제가 자유롭지 못 했던 50년 전에 비해 요즘은 남녀가 만날 기회도 많아졌고 방법도 다양해졌다. 맞선이 아니더라도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연락할 경로는 많다. 소셜미디어의 DM이 요즘엔 맞선을 대신하기도 한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다. 여성이 먼저 호감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세상 변화가 놀랍다.

기사는 맞선으로 만나 2년을 사귄 끝에 결혼했다는 삼십대 국회의원의 경험담을 실었다. 국회의원의 맞선 이야기라니 귀가 솔깃할 수밖에. 그는 자신이 실험했던(?) ‘좋은 아내를 만나기 위한 사전 테스트’를 공개했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첫째, 약속 시간을 3번에 1번꼴로 어겨 상대방의 관심도를 측정한다. 끝까지 참고 기다리면 일단 안심해도 좋다.

둘째, 상대방의 옷차림새를 체크한다. 1년 동안 4계절 옷차림을 일일이 메모해두면 상대방의 취미, 교양, 저축심 등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비교적 검소한 차림새에다 짙은 원색 계통을 피하고 소박한 색채를 좋아한다면 오케이.

셋째 인내심을 본다. 점심 저녁 식사를 통해 어느 정도 참을성 있게 식사를 기다리는지를 살핀다. 식사는 물론 조리사에게 슬쩍 늦게 내오라고 부탁한다. 택시를 기다리고 만원 극장 매표구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것 등으로 참을성을 테스트한다.

다음 단계가 건강을 보고 최종적으로 교양과 품위, 미모 등을 참고한다.


어째 몰래 카메라가 따로 없는 테스트다. 개인 생각이고 방법이니 토를 달 일은 아니라지만 고루하고 인격 모독일 수도 있고, 유치해 보이기까지 한다. 50년 전에는 이런 생각과 방식도 통했던가 보다.

요즘 세상에서는 매 맞기 딱 좋은 방법이다. 50년 전 맞선으로 짝을 만난 한 사람의 특별한 에피소드쯤으로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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