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효원기자] 록 밴드 송골매의 배철수를 사랑한 초등학생이 있었다. 1978년 MBC ‘대학가요제’ 방송에서 ‘탈춤’을 듣고 감전된 듯 배철수에게 빠져들었고 송골매의 팬이 됐다. 노래를 따라 부르고 앨범과 사진을 사고…. 방송을 보다가 배철수가 감전돼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대성통곡을 한 아이. 그 아이는 자라서 소설가가 됐고, 45년 팬심을 담은 소설 ‘디어 마이 송골매’(교유서가)를 펴냈다.

송골매에 의한, 송골매를 위한, 송골매 덕후의 소설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스타가 살고 있나요

‘디어 마이 송골매’는 여고동창생 홍희, 은수, 미호, 기민이 40년 만에 송골매 컴백 콘서트에서 다시 만나 마음 속 열정을 되살리는 과정을 담았다. 지금은 식당 종업원, 가정주부, IT회사 임원 등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송골매에 관해서라면 대동단결이다. 이 책은 처음에는 “왜 송골매인가”하다가 책장을 덮을 때는 “나에게도 한때는 송골매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해준다.

-집필을 시작해 완성까지 12년이 걸렸다고?

보통 12년 걸렸다면 자료가 방대하거나 답사가 필요하거나 해야 하는데, 나는 첫 습작이라 오래 걸렸다. 시작해놓고 그사이 등단하고 다른 책을 내면서 사이사이 고치느라 12년이 걸렸다. 그래서 12년이 걸렸다고 얘기하기는 사실 부끄럽다.

-송골매 덕후가 쓴 송골매 소설이라는 점에서 책이 나왔을 때 감격스러웠을 듯하다.

첫 습작이어서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버려야 하나 했는데,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송골매를 좋아했던 내 빛나는 순간을 버릴 수가 없었다고 해야 정확한 말이다. 플롯도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로 잡았기에 더욱더. 그러다가 몇 년 전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의 D-100일부터 D데이까지 가는 플롯을 잡고 나니 글이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38년 만에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가 실제로 열렸다!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를 소설로 쓰고 있는데 실제 재결합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두 가지 마음이었는데 팬으로서는 너무 좋았고, 또 하나는 내 소설이 먼저 나왔어야 하는 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 소설이 마치 뒷북을 치는 것 같으면 어쩌나 했다. 그 와중에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에 가서 야광봉을 들고 하얗게 불태웠다. 팬심이 먼저였다.

-소설이 나온 뒤 송골매 배철수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성덕’이 됐다고?

소설이 출간되기 전 배철수 씨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추천사를 부탁드렸다. 무명 소설가의 소설에 배철수 씨가 기꺼이 추천사를 써주셨다. 그 인연으로 라디오까지 출연했는데 생방송이라 정신이 없어서 스타를 만나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정신없이 방송하고 왔는데 그것도 좋았다. 무슨 얘기를 하지 않아도 나의 스타는 스타로 늘 그 자리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네 명의 주인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마치 영화 같다.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썼을까?

쓰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책이 나온 뒤 그런 얘기를 듣고 있다. 영상화돼서 더 많은 사람이 송골매를 알게 되면 좋겠다. 특히 송골매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송골매가 얼마나 멋진지 알게 되면 소설을 쓴 보람이 있을 것 같다.

-마음속에 나만의 스타를 지니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얼마 전 딸과 함께 TV에서 해주는 지오디 25주년 공연을 봤다. 딸은 지오디의 25년 팬이다. 지오디 노래 중 “너희들의 그 예쁜 마음을 우리가 항상 지켜 줄 거야”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듣다가 울컥했다. 지오디가 지켜주어서 우리 딸이 이렇게 예쁘게 잘 자랐다는 게 느껴져 고마웠다. 딸이 “엄마! 누가 ‘디어 마이 지오디’를 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언젠가는 ‘디어 마이 지오디’도 나오지 않을까?

세상의 작은 존재들을 위로하는 소설을 쓸 것

이경란 작가는 늦깎이 소설가다. 마흔살에 데뷔해 늦깎이 소설가의 대명사였던 소설가 박완서의 기록을 경신했다. 이경란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잡지사에 취직해 잡지를 만들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웠다. 아이가 대학에 간 후에야 비로소 소설가라는 꿈을 떠올렸고, 쉰한 살이던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오늘의 루프탑’으로 등단했다. 등단 후에는 꾸준히 소설을 써 소설집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 ‘다섯 개의 예각’, 장편소설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 등을 펴냈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소외되고 작은 존재들이다. 세상에서 지워져 가는 이름들을 호명해 괜찮다고, 함께 걸어가자고 이야기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소외된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결과물을 놓고 보면 일관된 면이 있다. 소설은 결국 사람 이야기인데, 모든 게 갖춰진 충만한 사람 이야기는 내가 새삼 할 이유가 없다. 인간은 누구나 다 부족한 존재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위로하지 않으면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나. 누군가는 이걸 돌봄이라고 하더라. 돌봄이 필요한 시대다.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사람이다.

-인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곳이 있나?

어디를 가든 습관적으로 사람들을 관찰한다. 직업병 같은 거다. 인물에 관한 연구가 소설의 시작이자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물을 잘 알지 못하면 쓸 수가 없고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물을 구축하는데 잡지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도움이 된다. 그때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던 게 이렇게 쓰일 줄 몰랐다. 또 개인사도 한몫한다. 나는 가난-부자-가난 순으로 경험하면서 세상에 대해 좀 더 넓고 깊은 시선이 생긴 듯하다. 그게 소설 쓰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

-쓰는 게 행복하다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늦게 데뷔해 소설을 쓴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쓰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 소설을 쓰기 위해 생존을 유지할 정도로 돈벌이를 한다. 그런데 소설 쓰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돈벌이 능력이 점점 퇴화하는 게 문제다. 그럼에도 쓰는 게 제일 재미있으니까 쓴다. 이게 연애와 똑같다. 연애가 힘듦과 행복이 다 있듯 글쓰기도 고통스러운데 행복하다. 행복하려면 자꾸 쓰는 수밖에.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요즘은 환경 관련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어디를 가든 머리 한쪽에 주인공이 들어있다. 쓰고 나서 혼자 ‘자뻑’했다가, 조금 지나서 좌절했다가 혼자 계속 그런다. 남들은 외롭지 않냐고 하는데, 심심할 새가 없다. 항상 하루가 짧다. eggrol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