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 기자]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동숭동 마미청국장의 김정득 사장은 눈이 벌게져 공연장을 나섰다. 김 사장을 알아본 관계자들의 인사에 그는 다시금 눈시울을 붉혔다.
마미청국장은 학전 소극장 직원들, 그리고 학전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인들이 식사를 해결하던 곳이다. 당초 학전소극장은 직원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마미청국장을 비롯, 대학로 일대 식당 세 곳과 계약을 맺었다. 직원들 외에도 학전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이라면 식당 장부에 표기만 하면 누구나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배우들이 배를 곯지 않게 하려는 학전만의 작은 복지였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공연계가 ‘셧다운’되면서 학전도 자금난에 시달렸다. 김민기 대표가 사재를 털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미지급 식대가 늘어나면서 식당 두 곳은 계약을 해지했다. 하지만 마미청국장만큼은 마지막까지 학전과 인연을 이어가며 넉넉한 인심으로 밥을 퍼주곤 했다.
이 에피소드를 들으며 가장 먼저 “그렇게 어려운데도 공짜 밥을 주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뷔 전 연습생 육성 기간 숙식비용까지 모두 추후 정산하는 K팝 아이돌 기획사들과 달리 학전은 식대만큼은 오롯이 극장이 담당했다.
대학로에서 포스터를 붙이던 배우 설경구도, 대학을 졸업하고 오갈 곳 없던 황정민도, 고양시에서 전전하던 포크송 가수 윤도현도, 그리고 약관의 청년 조승우도 모두 학전이 제공하는 밥을 먹으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지금은 이들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명배우, 명가수로 자리잡았다.
지난 달 28일부터 지난 14일까지 대학로 학전에서 열린 ‘학전 어게인 콘서트’는 김민기 대표의 ‘밥’을 먹고 성장한 가수, 배우들이 학전을 떠나보내는 배웅의 장이었다. 학전과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던 관계자들, 그리고 김민기 대표가 한때 거주했던 경기도 연천 이웃 주민들도 초청돼 공연을 관람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이수만 전 SM총괄 프로듀서도 1억 5000만원을 쾌척했다. 공연을 기획하고 주관한 가수 박학기가 공연장 배경을 학전무대에 선 가수들의 LP로 꾸민 게 발단이었다. 집에서 오래된 LP판을 찾던 박학기는 젊은 시절 이수만의 LP판을 발견한 뒤 이 전 총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LP표지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뮤지션 이수만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이에 이 전 총괄은 웃으며 “김민기 형님의 쾌유를 바란다”고 기부금을 보내왔다. 당초 박학기는 “이 전 총괄이 부담스러워 할테니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지만 18일 언론을 통해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고 말았다. 사회 곳곳에서 보내온 온정의 손길을 마다했던 학전이지만 이 전 총괄의 기부금은 학전의 물질적 빚을 청산하는 비용으로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일말의 아쉬움은 남는다. 학전이 존재했을 때 먼저 관심을 기울였다면, 마미청국장처럼 김대표의 의중에 동조했다면 ‘학전’이라는 이름을 떠나보내지 않았을텐데라는 안타까움이다.
김대표는 “내가 없는 학전은 없다”며 학전의 폐관을 결정했다. ‘배우는 못자리’(學田)라는 이름처럼 대중문화인들의 씨앗을 뿌려 수확했던 학전은 33살 생일에 스스로 문을 닫았다. 이제 누가 대중문화인의 농부를 자처하며 김 대표에게 진 빚은 누가 갚을까. 대중문화계에 남은 숙제다. mulga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