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너무 과한 기대일까.
박지성과 이영표는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전설 중의 전설이다. 레전드라는 표현도 부족할 만큼 위대한 현역시절을 보냈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라는 거대한 세계를 한국에 소개한 선구자였다.
이들이 꺼내는 메시지는 그래서 더 무겁다. 파급력도 크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대한축구협회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자 대중은 ‘사이다’라며 지지한다.
실제로 두 사람이 꺼낸 말 중에 틀린 내용은 거의 없어 보인다. 협회는 비판받은 것 이상으로 무능력하고 한심하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박지성과 이영표의 ‘펀치’는 협회와 정몽규 회장에게 확실한 데미지가 될 만하다. 이들 입장에서도 용기가 필요했던 행동일 게 분명하다.
대중의 열광을 뒤로하고, 축구계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 사이에서는 박지성과 이영표의 ‘바른말’ 이면의 ‘공허함’을 주목하기도 한다. 두 사람의 은퇴 후 행보 때문이다.
이영표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그가 부회장으로 일하던 당시에도 협회는 졸속 행정, 시스템 붕괴 등으로 인해 비판받았다. 이영표가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아시안컵 개최 사업은 처참하게 실패했고,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등 부정적인 이슈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영표는 이 문제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불과 지난해의 일이다.
이영표는 자신이 직접 감독을 선임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다. 2017년 당시 이임생 기술위원장은 “개인적으로는 이영표 같은 훌륭한 분이 와서 한국 축구를 빛내주기를 희망한다”며 이영표가 기술위원회에서 일하길 원한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이영표는 이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박지성도 다르지 않다. 그는 지난 2017~2018년 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을 맡았다. 은퇴 후 처음으로 축구 조직에서 일했는데, 박지성은 1년 만에 협회를 나왔다. 협회 내부에서 한계를 느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영국 체류 문제 때문에 조기에 물러나는 게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게다가 박지성은 행정가로서 일하고 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가 테크니컬 디렉터로 일하는 전북은 K리그1 11위에 머물며 강등 걱정을 하고 있다. 구단 안팎에서는 박지성 ‘책임론’이 나온 지 오래다. 누군가가 박지성이 협회를 향해 비판한 것처럼 박지성을 향해 목소리를 낸다면 그는 어떠한 답변을 내놓을까. 실제로 전북 구단과 밀접한 복수의 관계자는 그의 발언에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반면 박주호는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만큼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비판할 자격이 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진흙탕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느낀 한계를 이야기하면 당연히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박주호가 순식간에 한국 축구의 ‘영웅’처럼 떠오른 배경이기도 하다.
협회에 회의적인 축구계에서도 적어도 박지성, 이영표 정도의 ‘거물’이라면 입으로만 비판할 게 아니라 한국 축구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해낸 후 입을 열어야 한다는 정서가 존재한다. 하기 싫은 지도자를 하라는 것도,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들이 주어진 역할을 잘 해냈거나, 혹은 한국 축구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뛰었다면 한국 축구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