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 기자] 모두 놀랐다. 공을 던진 투수도, 공을 받은 포수도, 상대한 타자도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중계화면에 찍힌 구속은 시속 147㎞. 공의 움직임은 고속 슬라이더 혹은 컷패스트볼이었다. 중계진 또한 감탄사와 물음표를 두루 던졌다. 지난 3일 KIA 마무리 정해영이 LG 박동원에게 던진 공 하나가 큰 화제를 일으켰다.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정해영은 이날 7-4로 리드한 9회초 마운드에 올랐다. 마무리 투수로서 자연스럽게 등판해 1이닝 1실점으로 승리를 완성했다. 화제의 순간은 막바지에 나왔다. 2사후 박동원을 상대했는데 박동원은 정해영이 던진 세 번째 공에 헛스윙한 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을 봤다는 듯 곧바로 주심과 포수 한승택에게 구종을 물었다.

그럴 만했다. 정해영은 속구 슬라이더 포크볼 세 가지 구종을 던진다. 기록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올해 속구는 평균 145.5㎞, 슬라이더는 평균 132.6㎞, 포크볼은 평균 128.8㎞를 기록했다. 속구 평균 구속보다 빠른 공이 우타자 바깥쪽으로 꺾이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 후 많은 이들이 정해영에게 미스터리한 147㎞ 마구에 관해 물었다. KIA 구단 관계자는 “여기저기서 많이들 물어본 것 같다. 정해영 선수의 답변은 속구다. 그냥 속구 그립으로 던졌다고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어떻게 던졌는지는 정해영 선수도 모른다고 한다. 어떻게 던지는지 알면 이것만 던지고 싶다면서 본인도 신기해했다”라고 전했다.

당시 경기를 지켜본 KIA 심재학 단장 역시 깜짝 놀랐다. 심 단장은 “저걸 알고 던졌다면 정해영 선수는 바로 리베라가 되는 것 아니겠나”라고 웃으면서 “알고 던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최고 마무리다. 하지만 알아보니 약간 밸런스가 안 맞으면서 나온 것 같더라. 밸런스가 흔들리고 그립이 엇나가면서 내추럴 슬라이더 스타일의 공이 나온 듯싶다”고 밝혔다.

심 단장 말한 마리아노 리베라는 마구인 컷패스트볼 하나로 빅리그를 정복했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통산 652세이브로 메이저리그(ML) 통산 최다 세이브 달성자다. 당시 모든 투수가 리베라만 만나면 컷패스트볼 그립을 물어봤을 정도로 컷패스트볼은 리베라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연이 굵직한 결과를 낳을 확률은 있다. 리베라 또한 동료와 캐치볼을 하는 과정에서 컷패스트볼을 터득하게 됐다. 동료가 자꾸 공이 휜다고 불평했는데 이게 컷패스트볼 발견의 시작점이었다. 정해영도 당시 영상을 돌려보면서 던질 때의 느낌과 그립을 상기한다면 네 번째 구종을 습득할지도 모른다.

야구는 계속 진화한다. 보통 투수의 공에 타자가 맞춰간다. 투수가 빠른 공을 던지면 타자는 보다 간결하고 빠른 배트 스피드로 안타를 만든다. 투수가 강렬한 무브먼트 동반한 변화구를 내세우면 타자는 스윙 궤적에 변화를 준다. 100년이 훌쩍 넘는 긴 시간 동안 이러한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정해영이 던진 이 공은 최신 트렌드에도 부합한다. 좌타자 몸쪽, 우타자 바깥쪽으로 향하는 초고속 스위퍼로도 볼 수 있다. 강하게 꺾이는 공이 주목받는 시기에 정해영의 공 하나에 많은 이들이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