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해바라기’ 뒤에 감춰진 ‘금단의 꽃’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희미한 조명 아래 무대 언저리에 피어있는 ‘해바라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죽음과 맞바꾼 한 남자의 이야기를 대변한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해바라기의 꽃말을 빌려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을 넘어 인류애까지 노래한다.

‘베르테르’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뮤지컬의 숨을 불어넣은 작품이다. 올해 25주년을 맞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무대와 의상, 잔잔하면서도 구슬픈 오케스트라 선율을 더해 서정적 메시지를 증폭시킨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행복 가득한 1막과 달리 2막은 그 사랑을 지키려는 자의 절규로 이어진다. 무대 좌우는 흑과 백으로 나뉘어 세 남녀의 심리상태를 나타낸다. 절망에 빠진 ‘베르테르’가 고블릿을 떨어뜨리거나 들리지 않는 심금의 ‘띠로리~’를 울려 자칫 ‘머저리’나 남자 버전 ‘미저리’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갈망하는 그의 애절한 순애보이자 사랑한 죗값에 대한 비극의 결말이다.

◇ 꺼지지 않는 사랑과 그리움 ‘해바라기’…그저 하늘 아래 피어있을 뿐

작품의 시작과 끝은 다양한 꽃과 함께한다. 발하임 사람들의 옷과 모자, 앞치마까지도 여러 꽃으로 장식돼있다. 그중에서도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건 해바라기다. ‘베르테르’만의 이야기가 아닌 작품 속 모든 인물의 심리를 그린다.

해바라기의 꽃말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순간의 ‘행복’ ▲그(녀)를 만난 ‘행운’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아갈 이유’ ▲그(녀)와 꿈꾸는 ‘밝은 미래’로 웃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운명을 거부하는 시간이 이어지면서 그 속에서의 ▲그리움 ▲기다림이 깊어진다.

사랑의 순수함을 더하기 위해 ‘롯데’가 이름을 지어준 ‘파란 엉덩이’와 ‘빨간 보조개’도 있다. ‘베르테르’와 ‘롯데’의 첫 만남부터 고백 없이 ‘베르테르’ 혼자 차였다며 좌절하던 순간까지 해바라기와 함께한다.

한 곳만 쳐다보는 짝사랑만 있는 건 아니다. 신분을 뛰어넘어 사랑한 ‘카인즈’를 구하기 위해 발하임 사람들이 경찰을 막아서면서 건네는 것도 해바라기다. 총부리를 땅으로 꺼뜨리는 ▲용기를 가졌다. 이같은 힘은 추후 ‘베르테르’가 ‘롯데’에게 솔직한 감정을 고백하게 한다.

◇ 붉은 유혹 ‘금단의 꽃’…아름다운 꽃잎에 가려진 가시

해바라기 같은 ‘베르테르’의 사랑이 결국 비극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붉은 ‘금단의 꽃’도 있다. 유혹적이면서 자극적인 이름이지만, 사실 ‘다가갈 수 없을 만큼 최상의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금단의 꽃’은 ‘알베르트’가 약혼녀 ‘롯데’에게 선물한 씨앗에서 개화했다. 그 씨앗을 그녀의 온실에 심었을 때 ‘베르테르’가 찾아왔다. 운명의 장난인 듯, 꽃이 만개했을 때 떠났던 ‘베르테르’가 다시 ‘롯데’를 찾아와 울부짖으며 사랑 고백한다. 하지만 ‘롯데’는 이미 ‘알베르트’와 결혼한 후였다.

세 사람이 처음 한자리에 모인 순간부터 엇갈린 운명은 시작됐다. ‘총기’들이 진열된 거실과 온실에서 꽃을 피우고 있던 ‘금단의 꽃’은 이미 이들의 미래를 예고한다. 여기에 ‘롯데’를 대신하는 맑고 투명한 피아노 선율과 ‘베르테르’의 아픔과 절규를 대신하는 바이올린 연주는 극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롯데’가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줬던 ‘자석산의 전설’처럼 두 사람 사이에 ‘해바라기’가 아닌 ‘자석’만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베르테르’ 역 엄기준·양요섭·김민석, ‘롯데’ 역 전미도·이지혜·류인아, ‘알베르트’ 역 박재윤·임정모 등이 감동을 선사하는 ‘베르테르’는 3월16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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