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2025년 상반기는 확실했다. 누구보다 분명한 감정과 에너지로 시간을 이끈 배우는 이병헌이었다.
이병헌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장르도, 플랫폼도, 형식도 가리지 않았다. 실사와 애니메이션, 넷플릭스와 극장, 주연과 성우까지, 좋은 작품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출발은 넷플릭스였다. 이병헌은 지난달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3에서 절대 권력자 ‘프론트맨’ 황인호로 돌아와 서사의 균형추를 쥐었다.
참가자들의 죽음을 통제하는 위치에서, 그는 차가운 논리와 복잡한 내면을 동시에 안고 서 있었다. 성기훈(이정재 분)과 대치하던 순간 죽음을 제안하며 흔들리는 내면을 드러내는 장면은 프론트맨이라는 캐릭터에 인간적 결을 더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로 압박감을 조율하는 이병헌 특유의 연기 방식은 시즌 전체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이어 공개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는 목소리 하나로 또 다른 빌런을 완성했다. K팝 스타들이 악령과 맞서는 이 액션 판타지에서 그는 ‘귀마’라는 존재를 맡아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에너지로 극의 긴장감을 이끌었다.
특히 안효섭이 연기한 진우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악의 실체를 구현하며, 한국어와 영어 더빙을 모두 소화해낸 이병헌은 ‘배우’의 범위를 다시 한번 확장시켰다.
이 두 작품은 넷플릭스 TV쇼와 영화 부문 글로벌 시청 순위를 각각 석권했다. OTT 시장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두 개의 전혀 다른 캐릭터, 다른 장르를 동시에 흥행으로 이끈 기록은 그 자체로 ‘이병헌 표 콘텐츠’의 파급력을 입증한 셈이다.

영화계에서도 이병헌의 영향력은 유효했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승부’는 여러모로 쉽지 않은 조건 속에서 출발했다. 전통적 비수기 시즌이었고 공동 주연 유아인의 사생활 논란도 있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손익분기점(180만)을 넘긴 214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이병헌의 이름값을 증명했다. 2025년 상반기 기준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한국 영화는 단 5편뿐이다. ‘승부’는 그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제 남은 건 하반기다. 이병헌은 16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에서는 찰스 디킨스의 목소리 연기를 맡아 깊은 울림을 전할 예정이다.
예수의 삶을 디킨스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북미에서 이미 80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한국에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병헌은 “불교 신자이지만,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히며 선택의 이유를 전한 바 있다.

올해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박찬욱 감독과의 재회다. 영화 ‘어쩔 수 없다’는 해고된 가장 만수(이병헌)가 가족과 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무너지는 가장의 권위, 자리를 잃어가는 사람의 몸짓을 이병헌은 특유의 절제된 연기로 채워갈 예정이다.
이 작품은 ‘쓰리, 몬스터’ 이후 21년 만의 협업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영화제의 주목도 함께 받고 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병헌은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에 그만의 방식으로 답했다. 장르가 달라도, 플랫폼이 바뀌어도 심지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이병헌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강하게 각인된다.
2025년은 그 이름이 얼마나 멀리, 얼마나 깊게 뻗어갈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