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글·사진 | 안동=원성윤 기자] ‘여행’은 때로 새로운 풍경을 찾아 떠나는 행위를 넘어,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번 코레일 관광개발이 주관한 ‘K-미식 벨트’ 투어는 선물과도 같았다. 안동의 ‘전통주 벨트’는 단순한 술을 넘어, 오랜 시간 명맥을 이어온 장인들의 땀과 혼이 깃든 문화유산을 오감을 통해 오롯이 느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 퇴계 이황이 감탄한 맹개마을, 밀밭에서 빚은 ‘진맥소주’



첫 방문지인 맹개마을은 고택과 너른 밀밭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풍경을 자아냈다.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밀 물결이 인상적인 이곳은 ‘밀과노닐다’가 ‘진맥소주’를 빚는 현장이다.
밀과노닐다 박성호 대표는 ‘맹개’라는 마을 이름부터 설명했다. 박 대표는 “본래 퇴계 이황 선생이 이 마을을 흐르는 강을 보고 ‘미천(米川)’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평탄하다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 ‘매내’를 거쳐 지금의 ‘맹개’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곳은 퇴계 선생이 “내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먼저 들어가네”라고 시로 감탄했을 만큼 수려한 풍경을 자랑한다.
이곳에서 빚는 ‘진맥소주’는 국내 최초로 밀을 원료로 상업화한 소주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박 대표는 오크통 숙성주 ‘시인의 바위’에 담긴 특별한 의미에 대해 “이 마을에겐 퇴계 선생이 대학자가 아닌 ‘시인’이다. 강 중간에 그가 이름 붙인 ‘정암’이라는 바위가 있다”며 “갓 증류한 거친 소주(바위)가 오크통 숙성을 통해 부드러움(시인)을 품게 된다는 이중적 의미도 담았다”고 덧붙였다.
◇ 명인의 고집, 안동소주의 깊이를 더하다: ‘삼단사입’과 ‘증류 원형’

안동은 소주 고유의 향과 맛을 보존해온 ‘전통주 벨트’의 핵심이다. ‘박재서 명인의 명인 안동소주’와 ‘김연박 명인 민속주 안동소주’와 같은 전통 안동소주는 희석식 일본소주와 차별점이 명확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제조 방식에 있다. 일본 소주가 주로 쌀, 보리, 고구마 등을 사용해 발효시킨 후 연속 증류 방식을 사용하는 반면, 안동소주는 쌀과 누룩을 주재료로 단식 증류 방식을 고집한다. 단식 증류는 증류 과정에서 알코올과 함께 원료의 향과 풍미가 그대로 보존돼 술에 깊이와 개성을 부여한다.
특히 명인 안동소주는 발효 과정에서 ‘삼단사입’ 방식을 더해 이 풍미를 극대화한다. 박찬관 대표는 “보통 막걸리에서 증류를 하지만, 우리는 막걸리가 다 된 상태에서 덧밥(고두밥)을 더 넣는다”며 “그렇게 25일간 발효시킨 ‘천주(川酒)’를 증류하기에 술맛이 한층 더 부드러워진다”고 설명했다. 묵직한 바디감 속에서도 원재료의 향긋함이 살아나는 이유다.


민속주 안동소주의 김연박 명인은 물을 일절 섞지 않는 전통 증류 원액 방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김 명인은 “요즘은 높은 도수로 술을 뽑아 물을 타서 도수를 맞추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일체 물을 섞지 않는다”며 “처음 나오는 70~75도의 고도주 원액과 나중에 나오는 20도 정도의 원액을 섞어 45도를 맞춘다. 이것이 바로 ‘증류 원형’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김 명인은 “그렇기 때문에 밖에서 마시는 술과 우리 양조장에 직접 와서 마시는 술맛이 다르다고들 한다”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바로 내놓지 않고 숙성을 시켜야 하지만, 우리 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좋아진다.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우리 술을 맛본 세계적인 손님들도 ‘위스키보다 훌륭하다’고 칭찬해준다”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 KTX 왕복·숙박 포함 25만 원…안동의 ‘정수’를 맛보는 1박 2일



코레일 관광개발이 내놓은 안동 ‘K-미식 벨트’ 체험은 1박 2일 일정이다. 10월 24일, 10월 31일, 11월 14일, 11월 21일 총 4회 운영될 예정이다. 1인당 25만 20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았다. 여기에는 서울-안동 왕복 KTX, 숙박, 모든 식사와 체험 비용이 포함돼 있다. 단순히 경치 좋은 곳을 둘러보는 것을 넘어, 기차 여행의 낭만과 함께 대한민국 전통주 문화의 정수를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는 구성이다. 안동 전통주 산업과 지역 관광 활성화, K-미식 콘텐츠 확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socool@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