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 父子 이야기
뒤주에 갇힌 8일…잠시나마 이상 실현 ‘타임루프’
뜨거운 호응 이끈 초연…11월2일까지 연장 공연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한나라에 해와 달이 떴다. 이는 하늘의 두 왕(王)이 아니다. 아침과 밤도, 선(善)과 악(惡)을 나타내는 극과 극의 관계도 아니다. 어긋난 운명에 피눈물 흘린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이다. 남보다 못한 관계로 역사에 기록된 조선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타임루프를 통해 화해를 청한다
지난 9월 초연 무대에 오른 창작 뮤지컬 ‘쉐도우(SHADOW)’는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영조와 사도세자의 ‘임오화변(壬午禍變)’를 배경으로 타임루프 판타지를 더한 록 뮤지컬이다.
작품은 1762년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 이훤이 굶어 죽어가던 8일 동안 과거로 떠난 시간여행에서 어린 시절의 아버지 영조 이금을 만나, 죽어서도 풀지 못한 부자(父子)간 갈등을 뜨겁게 풀어낸다.
평생 두려움과 고독에 휩싸여 외로움이라는 무게에 짓눌 한(恨). 이들은 서로의 사랑을 갈구했으나, 숨통이 끊기는 순간까지 진심은 끝내 닿지 못한다.
그로부터 263년. 다시 한번 ‘벼락신’의 도움으로 시간여행 한 ‘사도’ 진호·신은총·조용휘, ‘영조’ 한지상·박민성·김찬호가 이들을 대신해 서로에게 용서를 구한다.

◇ 고통의 시작 ‘뒤주’…닿지 못한 父子 연결한 ‘벼락의 힘’
‘생각할수록 슬프다’는 뜻을 가진 이름 ‘사도(思悼)’. 작고 어둡고 습한 작은 나무 상자 안에 갇힌 잔인했던 8일, 그리고 아들을 뒤주에 가둔 아버지의 숨죽인 슬픔. 그림자조차 지우라는 명령은 이들의 비극적 결말을 예고한다. 누가 이들을 이토록 벼랑 끝까지 몰아세웠는가.
사도가 옥추경(玉樞經)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뒤주에 붙인 순간, 벼락의 힘으로 5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간 속에서 만난 영조. 하지만 사도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로 던져졌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후 꿈같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잠시나마 뒤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사도는 그에게 무술, 노래, 춤 등 숨겨왔던 자신의 재능을 가르치고, 좋아하는 소설책과 홍시를 선물한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의지하는, 둘도 없는 ‘비밀 친구’가 된다.
그곳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지킨다. 어쩌면 붙잡고 싶은 마음이 꿈처럼 펼쳐진 것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들을 수 없는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 이룰 수 없는 꿈을 스스로 보듬고 싶었던 마음일지도 모른다.
‘쉐도우’는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생긴 비참한 사랑의 최후를 이야기한다.

◇ 실험적 하이브리드 미학이 선보인 온도 차
한 많은 부자의 이야기는 현대극을 통해 과거와 다른 시간의 문을 통과한다. 비극을 예술로 승화시켜 희극의 환희를 창조한다.
무대에는 철제 뒤주만이 중앙에 자리한다. 영조와 사도를 갈라놓은 원천지이지만, 두 인물을 이어주는 타임캡슐이다.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서로의 얼굴을 감싸며 운명의 장난에 목 놓아 운다. 버림받은 부자가 흘린 사죄의 눈물이다.
현대적 감각을 더한 의상에서 두 인물의 시선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학문보다 중국소설에 심취했던 사도는 비단이 아닌 모시옷으로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을 보여준다. 반면, 권력의 풍랑에 의해 의심이 많았던 영조는 붉고 검은빛의 용포는 가죽으로 스스로 보호하려는 갑옷과 같다.
두 인물의 심리적 갈등은 조명과 영상을 통해 심리적 갈등을 극대화한다. 사도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연(緣)을 끊을 수 없는 영조의 애틋함이 처절한 그림자로 묻어난다.
단조롭지만 섬세한 연출 속에 19곡의 넘버가 이들의 행복한 웃음과 처절한 울부짖음을 표현한다. 헤비 록부터 컨트리 록까지 가슴 뻥 뚫리는 노래들은 관객들의 심장을 두드린다. 잠시 비극임을 잊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한 많은 부자의 사연을 260여년이 지난 지금, 무대 위에서 대신 풀어주는 ‘쉐도우’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려 오는 11월2일까지 서울 강남구 백암아트홀에서 연장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