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러시아 소설 ‘외투’+실화 바탕 창작극
문학이 이룬 자유·평등…인물별 사상 차이의 외침
11월30일까지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러시아어로 ‘12월’을 뜻하는 ‘데카브리(Decabri)’. 1825년 12월14일 러시아에서 일어난 청년 장교들의 반란인 ‘데카브리스트의 난’에서 유래한 용어다. 19세기 러시아의 자유주의를 외친 역사를 뮤지컬 ‘데카브리’가 3명의 인물을 통해 각자의 신념을 대변한다.
‘데카브리’는 러시아의 대문호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의 소설 ‘외투’를 모티브로, ‘데카브리스트의 난’을 엮어 창작된 작품이다. 귀족과 농노가 철저하게 나뉜 19세기 러시아의 처참한 현실을 인간 내면의 울림으로써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작품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풀이하지 않는다. 검열과 탄압의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서로 다른 외침, 암울한 시대적 배경을 표현하는 단조 구성의 서정적 넘버, 3명의 배우가 끌고 가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인물들의 목소리는 결국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비로소 하나로 합쳐진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자유와 평등은 각자의 사상과 이념에 따라 너무도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갈등으로 인해 시작된 각각의 혁명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사상과 문학, 시대에 대한 서사를 책임지는 ‘미카일’ 역 손유동·정욱진·정휘, ‘아카키’ 역 신주협·김찬종·홍성원, ‘알렉세이’ 역 변희상·유태율·이동수가 200여년 전 눈물의 전쟁터로 안내한다.

◇ 한 공간서 펼쳐지는 양(陽)과 음(陰)
‘데카브리’는 무대·조명 디자인부터 의상, 소품까지 작품의 메시지를 섬세하게 담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인물들의 심리전에서 각자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무대는 한 공간인 듯 다른 장면을 연출한다. 계급적 서열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위치와 ‘운수 좋은 날’처럼 역설적인 장면을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특히 서점같이 보이는 장소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인물들의 공용공간으로 쓰인다. 특수효과 없이 벽난로를 쬐듯 따뜻한 공기와 차갑게 얼어붙은 땅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작품의 의상 콘셉트는 빛과 그림자다. 이 둘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처럼 지위를 이용해 폭력을 행하는 자와 당하는 자를 표현한다.
이는 각각의 인물이 걸친 코트에서부터 각자의 신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3부 소속 군인인 ‘미하일’과 ‘알렉세이’는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무채색 계열을 선택했다. 하지만 고급 소재와 묵직함으로 높은 신분임을 드러낸다. 반면,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인 ‘아카키’는 사회체제 탓에 죽임당한 농노들이 묻힌 땅의 컬러를 사용, 민중의 혁명을 예고한다.
무대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책은 위로와 용서 그리고 두려움을 의미한다. 농노들이 품었던 ‘말뚝’은 과거 ‘미하일’이 쓴 책이다. 출간 및 유통이 전면 금지된 상황에서도 이를 놓지 못한 ‘아카키’의 작은 불씨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 속에서 이를 숨겨준 ‘미하일’의 눈물이 담겨있다. 하지만 ‘알렉세이’에게는 귀족사회에 파멸을 불러올, 반드시 막아야 하는 존재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뚝은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의 무덤을 뜻한다. 문학의 힘을 빌려 자유를 외친 이들의 영혼이 잠든 곳이다. 아무 길에 버려진 말굽 같지만, 억압된 저항에 불꽃을 일으키는 목소리다.

‘데카브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 죄로 죽은 ‘아카키’의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 자유 혁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미하일’과 ‘알렉세이’를 향해 손가락질만 할 수 없다고도 조명한다. 인물마다 그러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제각각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문학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또 이를 통해 사상이 바뀐 세 사람의 이야기 ‘데카브리’는 11월30일까지 서울 대학로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