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극장→대학로 중소극장…규모 아닌 장치적 변화

‘윤재’ 향한 따뜻한 시선…공동체 의식 강조

3명의 캐릭터가 함께 성장하는 레이스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괴물’이라고 불리는 한 아이가 있다. 어릴 적 사이코패스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알고보니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해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불치병과 같은 아픔이다. 하지만 주변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 공감하는 법을 터득한다. 이론적 학습이 아닌 감정 소통을 통해 치유된다.

뮤지컬 ‘아몬드’는 전 세계 30여개 국가에서 베스트셀러로 오른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에 노래를 입혀 실사화한 작품이다. 아몬드처럼 생긴 뇌 속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알렉시티미아’라는 신경학적 장애를 지닌 소년 ‘윤재’의 성장기를 이야기한다.

‘윤재’와 함께 현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공감과 소통의 의미를 전하는 ‘곤이(윤이수)’와 ‘도라’가 등장한다. 비슷한 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지만, 주변을 둘러봤을 때 꼭 한 명쯤 있을 친근한 캐릭터다. 세 인물은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이해하면서 점점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 ‘윤재’의 회고록…곳곳에 숨은 관람 포인트

3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아몬드’가 현재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초연과 비교해 무대부터 스토리 전개, 배우들의 동선과 퍼포먼스, 넘버까지 모두 새로워졌다. 이는 극장 규모에 따른 변화가 아닌 아예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느낌이다.

가장 큰 변화는 대극장에서 중소극장으로 옮긴 무대다. 공연장의 규모가 줄어, 무대 위엔 ‘윤재’가 운영하는 책방만 자리한다. 그런데 층계나 곳곳에 숨은 장소들을 세심하게 활용해 배우들의 멀티 역할이 돋보인다. 새롭게 도입된 LED 영상이 시공간의 변화는 물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내면까지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배우들의 동선과 동작도 간결해졌다. 김태형 연출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배우들의 등·퇴장을 최소화해 늘 윤재 곁에 존재하도록 연출했다. 이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가 홀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여러 시선과 관심 속에서 조금씩 변화한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관객들이 ‘윤재’의 삶이 결코 혼자가 아님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핵심 장치다.

초연과 비교해 크게 바뀐 스토리는 없지만, 전개와 넘버 편곡 등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특히 커튼콜 넘버와 배우들의 퇴장 연출에서 변화를 입혔다. 정서적인 극 분위기를 더 길게 뺀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초연과는 다른 여운이 남는다.

대신 극의 시작과 끝에 ‘윤재’가 글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체 극의 내용이 ‘윤재’의 회고록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했다. 멀티 배우들은 극 중 인물을 연기하는 것 외에도 ‘윤재’의 마음속 생각을 담은 내레이션을 들려주는 역할도 한다. 김 연출은 “멀티 배우들이 곧 ‘윤재’의 회고록을 읽는 독자이기도 하다. 회고록이라는 틀을 통해 관객이 이 작품만의 독특한 형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고 관람 포인트를 강조했다.

◇ 진정한 사람의 결실 ‘희로애락애오욕’

‘아몬드’는 서로의 애틋한 희망을 노래한다. 작은 소품, 단어 하나까지도 감정궤도를 이어간다. 뇌 모양을 닮아 많이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아몬드, 감정을 못 느끼는 로봇 ‘윤재’와 감정을 스스로 지운 깡통 ‘곤이’는 ‘깡통 로봇’으로 동맹을 맺는다.

특히 ‘사랑’을 표현하는 소품 중 하나인 자두 맛 사탕. 빨간 줄은 유독 빨리 녹아서 먹다 보면 혀를 베기 쉽다. 원작 소설에서 ‘윤재’의 할머니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말이야. 짭조름한 피 맛이 단맛이랑 어우러지는 게 그럴듯하거든”이라고 말한다. 김 연출은 “자두 맛 사탕의 특성은 희로애락이 어우러져 ‘여러 맛을 지닌 채 흘러가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윤재’가 가지고 있는 불치병을 알려고 하지 않는 시선,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던 ‘곤이’의 상처에 무관심한 환경,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별난 아이로 취급받는 ‘도라’에 대한 편견 등의 모습에서 이기적인 현시대의 민낯을 시사한다.

세 인물은 ‘도라’가 좋아하는 달리기처럼 다시 태어나 출발선에 함께 선다. “너무 쉽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남용하지 말라”라고 강조한다. 진정한 사랑만이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작품의 결말이 희극일지, 비극일지는 관객의 상상력에 맡긴다. 중요한 건 사랑과 관심이 나비의 작은 날갯짓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점점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남녀노소 나이 불문 모두에게 힐링극을 선사하는 ‘아몬드’는 12월14일까지 서울 대학로 NOL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된다. 초등학생 이상 관람할 수 있다.

신경학적 장애 ‘알렉시티미아’로 인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 역 문태유·윤소호·김리현이 출연한다. 어린 시절 납치된 후 소년원을 거치며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소년 ‘곤이(윤이수)’ 역 윤승우·김건우·조환지가 연기한다. 별명은 ‘또라이’지만, 육상선수를 꿈꾸는 맑은 감성의 ‘도라’ 역 김이후·송영미·홍산하가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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