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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땡볕 속에서 부채질하며 ‘슈퍼매치’를 본 사람들은 종료 휘슬 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로도 부족한 경기였다. 올시즌 두 번째 슈퍼매치는 두 달 전 첫 대결과 180도 양상을 띠며 재미 없는 90분으로 끝났다.
지난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FC서울과 수원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 몰려든 인파는 무려 3만9238명. 메르스 사태를 무색하게 만드는 구름 인파가 최고 라이벌전을 찾았으나 경기 뒤 남은 것은 지루한 0-0 무승부였다. K리그 클래식 대표 상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했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더니…” 이게 뭡니까11년 만에 슈퍼매치 무득점 무승부가 이뤄졌다.
지난 2004년 8월 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리그컵 0-0 이후 두 팀 맞대결은 무조건 1골 이상 나는 승부로 팬들에 재미와 감동을 한꺼번에 전달했다. 2007년 3월 21일 서울 4-1 완승, 지난 4월 18일 수원 5-1 대승 등 서로의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한 짜릿한 드라마도 적지 않았다.
이날은 전혀 달랐다. 두 팀은 초반부터 수비벽을 두껍게 쌓으며 탐색전만 벌였고, 결국 슛 5개, 유효슛 단 하나만 기록하며 전반 45분을 마쳤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나온 단일 경기 전반전 최소 슛이 4개로 모두 전력이 떨어지는 시민구단이 낀 경기였다. K리그 ‘양웅’이 겨룬다는 슈퍼매치에서 그보다 딱 하나 많은 슛이 나온 것이다. 그나마 팬들 아쉬움을 자아내게 하는 위협적인 슛은 하나도 없었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던 최용수 서울 감독의 말도, “슈퍼매치를 즐기겠다”던 서정원 수원 감독의 말도 모두 ‘공약(空約)’으로 끝났다.
직전 맞대결에서 수원이 5-1 대승을 거둔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당시 포백을 썼던 서울은 사실상 파이브백에 오스마르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세워 수원 공격 의지를 차단했다. 염기훈과 정대세, 산토스를 중심으로 한 수원 화력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수원도 일정 숫자를 하프라인 뒤에 포진시키며 박주영 중심의 서울 역습을 대비하고, 후반전 반격을 준비하다보니 경기장을 찾은 팬 입장에선 싱거울 수밖에 없었다. 수원이 후반 시작과 함께 수비수 최재수 대신 미드필더 권창훈을 넣고, 서울이 후반 중반 몰리나, 에벨톤을 투입하면서 서로의 심장을 노렸으나 날카로움은 하나도 없었다.
이날 경기 20개의 슛 중 유효슛은 6개에 불과했다. 기억나는 슛도 당연히 없었다. 이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압축해서 만들어도 지루했을 한 판이었다.
수비적인 전술을 떠나 두 팀은 기술적으로도 세밀하지 못했다. 크로스가 엉뚱한 곳으로 향해 아웃되는가 하면, 4~5차례 이상 연결되는 패스도 적었다. 볼이 자기 수비 진영에 오면 수비벽을 두껍게 쌓아 걷어내기 바쁜 모습만 자주 나왔다.
◇“‘슈퍼’란 단어를 빼라”vs“슈퍼마켓 매치다”…조롱 속출팬들도 폭발했다. 두 팀의 지루한 졸전에 화가 단단히 난 모습이었다. 맥 빠진 경기로 일관하다 끝난 지난 달 플로이드 메이웨더-매니 파퀴아오 복싱 대결에 비유해, ‘한국판 메이웨더-파퀴아오’란 얘기가 나왔다. “두 팀 경기에 붙는 슈퍼매치 중 ‘슈퍼’란 단어를 빼자”는 네티즌도 있었다. 거꾸로 ‘슈퍼마켓에서나 볼 수 있는 싸구려 매치’란 뜻에서 ‘슈퍼마켓 매치’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높았다.
이날 경기를 본 김상기(42) 씨는 “오후 5시 경기라 본부석 맞은편에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었음에도 참고 봤는데, 재미 없어서 너무 실망했다. 땀만 뻘뻘 흘리다 왔다”며 “K리그에서 가장 인기있다고 소문난 경기가 맞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팬은 “돈 아깝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서울 수원 모두 팬들에게 혼이 났지만, 홈에서 뒤로 물러선 경기를 펼친 서울에 비판의 강도가 더욱 셌다.
슈퍼매치란 이름은 두 팀이 굴지의 대기업과 수도권 거대 구장을 끼고 있어 붙은 이름이 아닐 것이다. 팬들 열기 못지 않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K리그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경기력과 매너를 선보여야 비로소 슈퍼매치란 단어가 어울린다. 지는 게 무섭다고 꽁무니를 빼는 경기를 했다간 ‘감동 없는’ 승점 1점은 얻을 수 있겠지만, 엄청난 팬심을 잃을 수 있다.
두 팀은 11년, 38경기만에 나온 무승부가 어쩌다 일어난 ‘이변’이었음을 9월 20일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현기기자 silv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