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김성철은 ‘결핍’을 먹고 성장했다. 지난해 OTT 시리즈 디즈니+ ‘노웨이 아웃’ 넷플릭스 ‘지옥 시즌2’에 이어 영화 ‘파과’에 이르기까지 그가 맡은 캐릭터는 대체로 결함이 많았다. 역설적으로 배우에게는 축복이다. 연기를 폭넓게 그려낼 기회이기 때문이다.
김성철은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가진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확실히 결핍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뭔가 꼬여있고, 왜 저럴까 싶은 인물을 연기하는 게 흥미롭다”며 “연기학원을 처음 갔을 때 느낀 감정도 그랬다. 대사를 하면 내 안에 있던 화와 울분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제가 맡은 역의 인물 감정선은 깊죠.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를테면 짙은 검은색 물을 걷고 있는 느낌이에요. 하수구에서 흘러나오는 칠흑 같은 물을 걷는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선천적으로 감정이 많은 거 같아요.”


김성철의 결핍된 캐릭터 연기는 뮤지컬과 영화로 뻗어나갔다. 20주년을 맞이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선 조승우, 홍광호 뒤를 이을 새로운 ‘철지킬’로 낙점됐다. 지난 30일 개봉한 영화 ‘파과’에선 30대 킬러 투우로 60대 킬러 조각(이혜영 분)과 맞서는 역할을 맡았다. 이혜영은 함께 호흡을 맞춘 김성철을 ‘뷰티풀 보이’라며 극찬했다. 그가 가진 순수한 얼굴 자체로 조각의 매력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둘 사이 미묘한 분위기가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조각과 투우가 서로 뿜고 있는 에너지가 부딪히면서 거기서 섹시함이 흘러나오니까요. ‘파과’에서 선생님(이혜영)과 깊고 길게 연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감탄한 순간도 있었다. 조각이 방역(살인)을 끝내고 집에 온 뒤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무심히 보는 장면이었다. 김성철은 “영화 대사 중에 세월의 무게를 견딘다는 게 있다. 찰나의 순간인데, 표정과 제스처에서 배우가 가진 힘이 확실히 드러났다”며 “지금까지 쌓아온 세월이 응축된 1분짜리 신에서 다 보여줬다”고 경외심을 표했다.

김성철은 소설 ‘파과’의 투우의 모습에서 한층 진일보했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살해한 조각에 대해 복수보단 연민의 감정을 앞세웠다.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던 마음도 슬쩍 내비친다. ‘손톱 좀 더 칠하고 가봐’ 같은 소리도 내뱉는가 하면, 곁을 내준 강 선생(연우진 분) 뒤를 쫓기도 한다.
조각의 뒷모습을 보고 여러 버전으로 나눠 찍었다. 주저앉기도 울기도 했다. 파국적인 결말의 감정을 증폭시키기 위해서였다.
“투우를 디자인할 때 관객들이 ‘쟤는 왜 저러는 거야’라는 궁금증을 유발하게끔 했어요. 물론 그걸 표현하는 건 어려웠죠. 마지막 3분을 위해 2시간을 빌드업했어요. 그게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올라갔으면 했고요. ‘파과’는 극장에서 한번 볼만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재미없단 소리는 듣지 않을 자신은 있어요.”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