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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은 KTX 고속열차를 타고 만나러 갈 수 있는 몇 안되는 동해의 해양도시다.

[포항=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누구나 동해하면 먼저 강원도를 떠올린다. 경포대가 익숙하고 속초에서 본 바다가 눈에 서렸을 게다.

하긴 아예 ‘동해’란 지명도 있다. 하지만 동해(남한 기준)는 강원도 고성군부터 부산시 해운대까지 이어져 있다. 만약 대구 등 경상북도에 사는 이라면 포항이 먼저다. 가운데 구간이 아직 개통하진 않았지만 익산포항고속도로와 광주 대구(88)고속도로도 있어 호남권에서 가장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동해도 포항 앞바다다.

포항은 동해의 등기부등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해안선을 지녔다.

“자아~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송창식의 고래사냥 노랫말처럼 포항은 강릉, 부산과 더불어 KTX 고속열차를 타고 떠날 수 있는 몇 안되는 동해안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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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운하

포항은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삼국유사)가 서린 곳이다. 이들이 떠나서 일본의 왕이 된 후, 한반도에 해와 달이 사라졌다는 내용이다. 비슷한 설화는 일본에도 있다. 일본서기에 천일창 설화로 등장한다. 이름은 다르지만 서로 일치하는 내용이 많다. 이를 뜨거운 불 다루는 철기(해)와 직조술(달)을 전래한 내용이라 주장하는 설도 있다. 실제 철기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 맞으니 당시 세계 최고 하이테크 기술을 전해줬는데 최근의 무역 보복이라니, 이런 배은망덕한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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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발트 빛 물이 넘실대는 포항 호미곶.

포항은 포스코가 출발한 도시로 국내 철강산업의 모항이다. 그래서 철의 도시로서 이미지도 강하다. 영일대해수욕장은 부산 해운대를 축소해놓은 것처럼 화려한 해변이지만 바다 건너 오륙도 대신 포항제철의 우뚝한 설비가 보이는 점이 다르다. 불을 밝히면 SF영화 블레이드 러너 속 ‘오프월드’나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의 ‘인더스트리아’같은 느낌이 난다.

특히 포항운하를 따라 돌면 멀리 보이는 굴뚝의 도열에 정말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렇지, 철강처럼 자급력을 갖춘다면 불화를 빚고있는 일본인들의 불화수소 따위는 걱정거리도 못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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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포항의 바다색.

포항역에 내렸더니 열기가 후끈하다. 제다이 광선검같은 햇살이 두피를 지글지글 태운다. 생 철괴도 녹일만큼 뜨거운 열기다. 열은 물회로 달래야 한다. 포항에서 물회를 먹지 않으면 무례한 일이다. 우리나라엔 물회로 유명한 곳이 많다. 우선 강릉이 그렇고 통영, 제주에서 물회를 특산 먹거리로 내세운다. 어차피 어부들이 뱃전에서 식은밥 넣고 훌훌 물에 말아 먹던 것에 원조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지역마다 특징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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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식 물회. 나중에 물을 부어 먹는다.

포항 물회의 특징은 육수가 아닌 물과 고추장을 넣는다는 것. 그중에서도 ‘북부시장식’은 청어 꽁치 등 등푸른 생선을 쓴다는 것. 흰살 생선보다 맛이 진하다. 여기 맛들이면 쥐치 물회는 싱겁다. 처음엔 비빔회로 먹다가 나중에 물을 부어 ‘발우공양’하듯 깨끗이 끝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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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비빔회.

부드러운 생선이 아삭한 채소와 매콤한 장맛과 어우러져 환상적 하모니를 낸다. 반쯤 먹고 물을 부어야 하는데 무침회 삼매경에 빠져 겨우 3할만 남겼다. 어쨌든 차가운 물회 한 그릇을 싹 비웠더니 한결 시원해졌다. 이제 호미곶을 한 바퀴 둘러볼 시간이다.

뜨겁지만 햇볕이 좋아 바다색이 눈부시게 푸르다. 새로산 청바지처럼 손을 넣었다면 바로 물들 것 같다. 길은 오르락내리락 그림 같은 바다 풍경을 선사하며 섬 같은 반도(곶)를 한 바퀴 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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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은 눈부신 바다 풍광이 좋아 어느 곳을 가도 포토존이 된다.

호미곶이야말로 여름에 가면 좋다. 겨울엔 해맞이 여행객이 너무 많다. 동해안에서 ‘갑툭튀’하면 바로 호미곶이다. 상생의 손이 마주보는 광장은 한결 여유롭다. 꽤 덥지만 광장 끄트머리까지 가면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비로소 숨통이 탁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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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룩이 아니라 마린룩이다. 포항에는 국가전략기동부대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다.

제주도에 가면 같은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남녀 커플룩이 많아 ‘난시’가 온 듯한 착각이 드는데, 이곳엔 똑같은 옷을 입은 남자가 예닐곱 명씩 다닌다. 옷은 물론 모자와 신도 같은 것을 신었다. 마린룩,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외출나온 해병대원이다. 간혹 바다에선 나약한 요트 대신 씩씩한 LVT상륙장갑차의 항해(?)를 볼 수도 있다.

해병대 도시로서 포항이 가진 매력이다. 이를테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패리스 섬(Parris Island)같은 위상이다. 역시 씩씩한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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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도시 포항의 영일대해변. 철로 만든 조형물이 많다.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도 호미곶에 있다. 영일만 해안 언덕 위에 정자와 신라 한옥촌이 들어섰다. 동해를 바라보는 풍광이 탁월한 위치다.

포항 호미곶 해상 둘레길도 이곳에서 이어진다. 한 바퀴 돌아오는 둘레길은 지금 풀코스를 걷기엔 조금 덥지만 입암리 부근은 작은 해변을 끼고 있어 시원하게 물놀이까지 즐길다 올 수 있다. 바깥쪽에 치우쳐 있어 일몰 일출을 한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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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어업 전진기지 포항 구룡포항.

구룡포도 들러야 한다. 과메기와 대게로 유명한 곳이다. 동해안 여느 어촌 풍경과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어업 전진기지로 굉장히 많은 어선이 출항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일본인이 구룡포로 몰려와 촌락을 이루고 살았다. 지금도 적산가옥과 일본식 거리가 일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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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이 남아있는 포항 구룡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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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항 대게 거리.

바다를 제대로 즐기기엔 신항만과 영일대 해변이 딱이다. 신항만 쪽에는 작은 규모 해변과 스쿠버다이빙 리조트들이 많다. 블루오션스쿠버민박은 초보 체험 다이빙부터 전문가 과정까지 모두 배울 수 있는 리조트다. 전용 보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민박도 겸하기 때문에 체재하면서 다이빙 기술을 배우고 여름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리조트 앞 호젓한 바닷가는 동해안 어떤 이름난 해수욕장보다 번잡하지 않아서 좋다.

휴가 기간 스쿠버 다이빙을 마스터하기 위해 찾는 젊은 층이 많아 바닷가 방파제에선 밤마다 파티가 벌어진다. 원래 해양 액티비티와 밤늦은 술자리는 한 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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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에는 다양한 수산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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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명물 개복치. 아무런 맛도 나지 않지만 식감이 좋아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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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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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에서 구입하는 생선회는 싱싱하고 저렴해 많이 포장해간다.

한수 아래 가장 큰 재래시장이라는 죽도시장은 무조건 들러야 한다. 축구장(14만8500㎡)보다 훨씬 큰 죽도시장 곳곳엔 어물전과 농산물, 혼수, 생활용품이 한가득이다. 가마솥이 펄펄 김을 뿜는 곰탕집들이 들어선 ‘푸드코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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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식당의 소머리곰탕, 소의 장기는 들어가지 않는다.

포항사람들은 세끼 모두 생선구이와 회를 먹을 것 같지만 사실 곰탕을 좋아한다. 죽도시장에 유명 곰탕집이 많다. 이중 장기식당은 ‘장기(臟器)’를 넣고 끓이는 게 아니라 소머리곰탕을 내는 집이다. 구수하고 진한 국물에 존득한 소머리를 가득 썰어 넣었다. 장기 자랑에 나서도 될 만한 집. 포항에는 장기라는 지명(장기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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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 풍경

시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칠성천·양학천으로 둘러싸여 있던 죽도는 섬이었지만 지금은 그대로 육지, 어시장이 됐다. 의 장터에는 활어·건어물·농산물 등 어물전과 혼수·의류·가구 등 생필품 상가들로 빼곡하다. 명물 돌문어·상어·고래고기 등 모든 수산물과 농산물이 거래된다. 가격도 싸고 먹거리도 지천이다. 시장통 작은 활어횟집부터 좌판과 수제빗집까지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가장 화려한 곳은 건어물전. 시퍼런 동해에서 올라온 생선과 해산물들이 미라가 되어 건어물 가게에 즐비하다. 황태 북어 노가리 문어 멸치 오징어 홍합 등 어패류부터 미역귀 김 파래 등 해조류까지 없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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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 내 경동수산. 다양한 건어물이 백화점 수준에 이른다.

죽도시장 경동수산 DOHSH은 겨울엔 과메기, 여름엔 건어물로 인기를 끄는 곳이다. 무려 50년의 노포로 가업을 이어가는 경동수산은 깔끔한 유통 라인에 세련된 포장으로 새로운 건어물 유통 전문점으로 다시 태어났다. 호미곶에 자체 덕장을 두고 제품을 생산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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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수산 해산물 레스토랑과 카페 바를 함께 운영한다.

죽도시장 내부와 운하 쪽에 따로 매장이 있다. 운하 쪽 매장은 자체 건물로 생선회 해물 등 맛좋은 한상 차림을 내는 해산물 레스토랑과 운하전망 카페&바를 같이 운영하고 있어 원스톱으로 ‘포항의 맛과 멋’을 즐기기에 편리하다.

영일대 해변에는 원조 핵인싸로 꼽히는 ‘폭탄주 이모’가 차린 맥주공장이 있다. 이름은 공장이지만 사실은 호프다. 유투브 이전에 이미 전국적 명성을 보유한 함순복 사장이 생일자나 특별한 날을 맞은 손님에게는 소주와 맥주를 섞은 다양한 칵테일을 ‘소문처럼’ 말아낸다.

요즘 귀하다는 오징어, 괜히 맥주 한잔 마실 일이 있을 것 같아 한 축을 사들고 올라왔다. 오징어 덕에 포항 여행의 여운이 오래 남을 듯하다.

demory@sportsseoul.com

●가는길=포항은 여행할 때 KTX고속열차가 편리하다. 포항 KTX역 앞에서 렌터카나 쏘카를 이용할 수 있다. 남쪽을 여행할 때는 경주역도 가깝다. 코레일(www.korail.com). 1544-7788.

●둘러볼만한 곳=북쪽 영덕 쪽 내연산(930m) 아래 보경사(寶鏡寺)가 있다. 원진국사사리탑(보물 제430호)과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가 보존된 보경사는 하늘을 찌를 듯 오르며 만나는 구비구비 계곡이 멋진 곳. 명경옥수가 흐르는 12폭포 청하골이 있다. 흐르는 물소리만 들어도 오감을 만족시킬 12폭포가 골마다 숨어 산행이 즐겁다. 상생폭포부터 보현폭, 삼보폭, 잠룡폭, 무룡폭을 거치면 계곡미가 절정을 이루는 관음폭포과 연산폭포까지 차례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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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은 바다의 맛이 넘쳐나는 곳이다. 곳곳에서 신선한 해물을 즐길 수 있다. 경동회수산

●먹거리=소머리 곰탕 장기식당(054)247-0764, 어시장 소머리곰탕 (054)241-0277 무침회와 물회는 영일대북부시장 새포항물회(054)241-2087, 명천회식당(054)253-8585. 소고기국밥 궁물촌(054)273-9777. 유화초전복죽(054)247-8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