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

‘남행선의 이중생활’이 아닌 ‘워킹맘의 이중생활’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의 주인공 길복순(전도연 분)은 직장에서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는 인재다. 하지만 그 역시 사춘기 딸을 키우는 엄마다. 마트 퇴점 시간에 맞춰 일을 끝낸 뒤 장을 봐야하고 학업 정보를 얻기 위해 엄마들의 브런치 모임 참석도 열심이다.

이 엄마, 직업이 특이하다. 대외적으로는 ‘이벤트 회사’에 다닌다고 포장했지만 알고 보면 청부 살인 업계 1위 회사의 전설적 ‘일타’ 킬러다. 딸은 출퇴근이 부정확하고 총과 가짜 여권을 숨겨놓은 엄마의 가방을 뒤진 뒤 “엄마 국정원에 다니지?”라고 묻는다.

죽어가는 사람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런 날은 집에 가서 애랑 눈 맞추기도 겁이 나”라고 토로하는 이 엄마, 회사에 사직서를 던질 결심을 한다.

◇워킹맘 엄마의 직업은 킬러, 도발적이고 발칙한 전복

‘길복순’은 회사에서 인정받는 워킹맘의 직업이 ‘킬러’라는 발칙한 발상에서 출발한다.

살인청부기업 MK의 킬러 복순은 볼펜, 마트에서 파는 3만원짜리 도끼, 검과 총까지 세상의 모든 도구를 자유자재로 흉기로 사용하는 프로페셔널한 인물. 하지만 그의 천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중2병’을 앓고 있는 사춘기 딸 재영(김시아 분)이다.

딸이 여자가 좋다고 고백했을 때에도 평정을 잃지 않던 복순은 재영이 또래 남자아이를 가위로 찔렀다는 소식을 듣고 기겁한다. ‘일타 킬러’도 딸이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걸 원치 않는다.

때마침 회사에서도 복순을 견제하는 세력이 늘어난다. 장시간 기득권을 쥐고 있는 복순의 아성에 도전하는 후배들이 점차 늘어난다.

영화는 사회의 모순을 킬러 세계에 빗대 도발적으로 전복시켰다. 사람을 죽이는 킬러도 자신의 아이가 킬러가 되는 걸 원치 않고 유능한 직원이 시기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블랙코미디처럼 펼쳐진다.

MK 대표 차민규(설경구 분)의 동생 차민희(이솜 분)가 경영에 참여하면서 민희는 “오래된 칼은 날도 무뎌지고, 쓸모가 없어진다”며 복순을 한 물 갔다 폄하한다. 하지만 민규는 “무딘 검날이 더 아프다”고 복순을 감싼다. 50대를 넘어섰지만 로맨스부터 액션까지 전 장르를 소화한 배우 전도연에 대한 변성현 감독의 헌사다.

전도연은 그 자체로 빛난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신입의 목을 볼펜으로 그은 뒤 “진짜 칼이면 너 죽었어”라고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짓는 표정은 압권이다. 격렬한 결투신에서도 그는 나비처럼 회전하며 몸을 날린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서 “50대 여배우도 로맨스를 연기할 수 있다”고 강조하던 ‘칸의 여제’다운 위엄이 느껴진다.

◇‘존윅’·‘킹스맨’ 등 어디서 본듯한 기시감…아쉬움 남는 연출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연출면에서는 몇몇 단점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성 킬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을, 청부살인업자의 생활상이라는 점에서 ‘존윅’을 연상케 한다.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 살인은 ‘킹스맨’을 떠올리게 한다.

‘워킹맘’의 직장생활이라는 한국적인 소재를 청부살인업과 버무리면서 조합을 제대로 못한 인상이다. 전도연은 빛났지만 그 외 설경구, 이솜, 구교환 등 여타 배우들의 쓰임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은 ‘불한당:나쁜놈들의 세상’(2017)으로 제 70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섹션에 초청받은 바 있다. ‘킹메이커’(2022)에 이어 ‘길복순’으로 자신의 연출세계를 공고히 했다.

다만 영화 속에서 킬러들에게 지령을 내리는 봉투에 ‘서울-한국’, ‘순천-전라’ 등으로 표기해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변감독은 ‘불한당’ 개봉 당시에도 “데이트 전에 홍어 먹어라, 향에 취할 것이다”라는 글을 리트윗했다가 사과한 전적이 있다.

영화는 공개 하루만에 넷플릭스 영화 세계 3위(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올랐다. 한국, 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홍콩 등 아시아 6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고 전세계 81개국에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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