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동영기자] 한국야구의 역사가 묻어있는 야구장이 또 하나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잠실에 돔구장이 들어선다. 잠실구장은 철거된다. 그 자리에 새 구장이 생기기는 하지만, 추억이 많은 곳이 사라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서울시는 18일 잠실 돔구장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있는 잠실구장은 헐고, 돔구장을 올린다.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복합사업의 일부다. 잠실종합운동장 일대가 대대적으로 바뀐다.
2025시즌 후 잠실구장을 철거하고, 2032시즌부터 돔구장에서 새롭게 출발한다. 야구계로서는 새 구장이 들어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40년 넘은 잠실구장을 대체할 야구장의 필요성은 예전부터 대두됐다.
2026~2031년 6년간 두산과 LG가 임시 홈구장을 써야 한다는 점은 걸린다. 서울시가 잠실주경기장 사용에 난색을 보이면서 비판 여론이 거센 상태다.
이쪽은 논의를 통해 풀어갈 수 있다. 서울시는 안전 문제를 말하지만, 지난해 8월 잠실에서 열린 포뮬러E 때도 큰 문제는 없었다. ‘어떻게’에 대한 협의가 필요해 보인다. 무작정 ‘안 된다’고 하면 서로 난감할 수밖에 없다.
사라지는 잠실구장에 관한 이야기도 나눌 필요가 있다. 지난 1982년 개장한 잠실구장은 한국야구의 ‘성지’로 꼽힌다. 개장 첫해 세계야구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가 있었고, 한대화의 3점포가 있었다.
세계야구선수권이 끝난 후 MBC 청룡이 잠실을 연고로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86년 OB가 공동 연고로 들어왔다. 이후 MBC가 LG가 됐고, OB는 두산으로 팀명을 바꿨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사실 LG-두산의 연고지지만, 서울의 특성상 10개 구단 모든 팬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거주하는 팬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잠실구장을 찾았다. 관중수로 보면 연간 거의 200만명에 달한다. 그 세월이 수십년이 쌓였다. 그사이 한국야구도 부흥기를 보냈다. 괜히 ‘성지’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구장이 사라진다.
한국야구는 추억이 갑자기 사라지는 아픔을 이미 맛본 적이 있다. 동대문구장이다. 2006년 10월 철거가 결정됐고, 2007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동대문구장은 아마야구의 ‘성지’다. 프로화 이전 아마야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고교야구 전국대회는 전국을 들썩이게 했고, 실업야구, 대학야구 등도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고교야구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프로 시작도 동대문구장이었다. 1982년 KBO리그 원년 개막전에서 MBC 이종도가 삼성 이선희를 상대로 끝내기 만루 홈런을 쐈다. 같은 해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두산 김유동이 이선희를 공략해 결승 만루포를 날렸다. 원년 시즌 시작과 끝이 만루포였고, 터진 장소가 동대문구장이다.
이런 곳이 정치적인 이유로 사라졌다. 프로야구에 이어 프로축구까지 동대문을 떠났고, 갑작스럽게 서울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동대문 재개발’을 외쳤다. ‘돈’이 됐기 때문이다.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된 후 디자인플라자 부지로 동대문구장 일대가 선정됐다. 야구인들은 반발했고, 반대했다. ‘실력행사까지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뚜렷한 움직임은 없었다.
그렇게 동대문구장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들어섰다. 대체 구장을 짓기로 했으나, 오롯이 지켜진 것은 없다. 결과물의 하나인 고척스카이돔이 있으나 아마가 아니라 프로가 쓰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잠실구장은 동대문구장과 살짝 결은 다르다. 같은 자리에 야구장을 철거하고 돔구장을 올리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입맛과 논리에 따라 상황이 변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동대문구장 철거 당시 시장이 지금 시장과 같다.
일단 구상대로 보면 ‘그 자리에 그대로 짓는’다. 동대문구장의 역사와 추억은 그냥 팬들과 야구인들의 머리와 가슴에만 살아 있다. 잠실구장의 그것은 다를 필요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보존해야 한다. 새 구장이 올라가겠지만, 어느 한쪽 구석이라도, 혹은 다른 장소에라도 ‘잠실구장의 무언가’가 보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방식을 찾을 때다. 아직 시간은 있다. 전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rainng99@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