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스코츠데일=윤세호 기자] “9회초 볼넷? 모르겠고 그냥 무진장(Holy XXXX) 추웠다.”

기사에 쓸 수 없는 단어다. 그래서 영어 표현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당시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LG 외국인 타자 오스틴 딘(31)이 사실상 29년 한풀이의 9부 능선을 넘게 한 작년 한국시리즈(KS) 3차전을 회상했다.

오스틴은 현재 2년 연속 LG 유니폼을 입고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인디언 스쿨 파크에서 스프링 캠프 훈련에 임하고 있다. 1년 전에는 모든 게 낯설었는데 이제는 팀 내 모든 구성원이 가족 같다.

그는 “작년에는 처음 동양 야구를 접했고 팀에 외국인도 나를 포함해 3명 밖에 없어서 걱정이 됐다. 물론 생각했던 것보다 팀에 빨리 적응하기는 했지만 올해처럼 편하지는 않았다”며 “이제는 우리팀 선수와 구성원 모두를 잘 안다. 다 친구 같고 가족 같다. 굉장히 편한 마음으로 캠프를 치르고 있다. 올해도 팀 승리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시즌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별히 숫자를 목표로 두지는 않는다. 원래 내 스타일이 그렇다. 팀에 헌신하고 팀은 꾸준히 승리해서 또 우승을 하는 게 목표다. 나는 그저 타격이든 수비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수비는 작년보다 좋아질 것 같다. 프로 입단 후 꾸준히 외야수를 하다가 작년 오랜만에 1루수로 돌아갔다. 작년 캠프까지도 외야 수비 훈련을 했다. 이번 캠프에서는 김일경 코치님과 1루 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다. 올해 수비에서도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싶다”고 공수에서 두루 팀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을 다짐했다.

이미 1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오스틴이다. 그만큼 작년에 KBO리그 첫해임에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타율 0.313 출루율 0.376으로 마냥 공격적으로 배트를 돌리지 않았다. 23홈런 95타점, 무엇보다 2사후 득점권 타율 0.361로 궁지에 몰릴수록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해결사였다.

그 모습이 작년 11월10일 KS 3차전에서 고스란히 나왔다. 3회초 오스틴은 KT 웨스 벤자민을 상대로 스리런포를 쏘아 올렸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난타전으로 흘러갔는데 9회초 결정적인 볼넷도 골랐다. 3회초 3점포와 9회초 볼넷 모두 2사 후에 나왔다. 9회초 볼넷은 LG 구단 역사에 영원히 남을 오지환 결승 3점포에 초석이 됐다.

오스틴에게 ‘벤자민 상대 3점포와 오지환에게 연결한 볼넷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는 플레이였나?’고 묻자 오스틴은 조금의 주저함 없이 “볼넷”을 외쳤다.

오스틴은 당시 상황에 대해 “모르겠고 일단 무진장(Holy XXXX) 추웠다”고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진짜 엄청 추웠는데 그 추위를 이겨낼 정도의 집중력이 발휘됐다. 어떻게든 오지환에게 연결만 하자고 마음 먹었다. 사실 처음에는 내가 홈런을 쳐서 동점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볼카운트가 0-2로 불리해졌다. 여기서 내가 살아나면 뒤에 오지환이 무언가 큰일을 낼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볼넷을 고른 후 나도 모르게 확신의 세리머니를 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오지환이 결승 3점포를 친 것에 대해서는 “뭔가 운명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바라고 있었는데 이뤄진 것 아닌가. 이건 정말 우승하는 운명이구나 싶었다. 오지환이 모두가 기대했던 그 모습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주장의 품격 같은 것이었다”고 당시 머릿속에 가득했던 생각을 나열했다.

다가오는 시즌도 뜨거운 승부를 기대한다. 좌투수 벤자민에 맞서 우타자로서 해결사가 됐는데 올시즌도 비슷한 임무가 주어질 것이다. 외국인 투수 중 좌투수의 비율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좌투수 류현진이 한화로 복귀했다.

오스틴은 “몇 년 전에 마이너리그에서 뛸 때 내 임무는 좌투수 전담이었다. 당시 정말 끝도 없이 좌투수를 많이 상대했다. 좌우 투수를 가리는 것은 아니지만 좌투수가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면서 “류현진을 잘 안다. 올스타 출신이고 류현진과 상대한 적은 없지만 얼마나 대단한 투수인지는 잘 알고 있다. 그저 나는 어느 투수와 맞서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