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추악함 대비 따뜻한 사랑의 노래…3월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입이 찢어져 가여운 한 남자가 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어두운 그림자보다 밝은 빛이 있다. 괴물 외모를 숨기지 않고 세상의 부조리와 편견에 당당히 맞서 민중의 삶을 대변한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이 이상의 위대한 작품을 쓰지 못했다”며 인정한 대작을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 콤프라치코스의 희생양으로 입이 찢어진 채 버려진 ‘그윈플렌’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를 조명한다.

작품은 귀족과 빈민층의 정반대 삶을 직설적으로 고발한다. 하지만 비극적인 상황에도 존재하는 사랑과 연민, 아픔과 치유 등을 얘기하며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

‘웃는 남자’는 K-뮤지컬의 선두 주자 EMK뮤지컬컴퍼니(이하 EMK)의 총 5년간 제작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공연 시작과 함께 EMK만의 거대하고 화려한 무대로 압도한다. 세계적인 음악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영혼이 담긴 넘버들은 웅장하면서도 때론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3년 만에 돌아온 ‘웃는 남자’의 초호화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지울 수 없는 미소를 가진 ‘그윈플렌’ 역 박은태·이석훈·규현·도영이 작품의 위대함을 고조시킨다. 곰 같은 풍채에서 연민의 정을 나누는 ‘우르수스’ 역 서범석·민영기가 연기한다. ‘그윈플렌’을 만난 후 내면까지 아름다워지는 ‘조시아나 여공작’ 역 김소향·리사와 순백의 천사 같은 ‘데아’ 역 이수빈·장혜린이 맡는다.

◇ 찢어진 입, 세상 부조리 고발…‘그윈플렌’ 닮은 초승달, 희망 메시지로 다가와

‘웃는 남자’는 실력파 배우들의 연기와 아름다운 넘버만으로 작품의 저력을 정의할 수 없다. 추위와 배고픔, 가난하지만 행복한 극단의 모습을 실현하기 위해 실제 175억 원대 초대형 제작비가 투입됐다.

매 장면 장관을 이루는 환상적인 무대는 감탄을 자아낸다. 당시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현실성을 더해 17세기 영국으로 빠져들게 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SF적 요소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로 시선을 빼앗는다. ‘데아’가 친구들과 물장구칠 땐 객석까지 물방울이 튀는 것같이 시원함도 느껴진다.

특히 삐뚤게 기울어진 의회석은 귀족들의 비웃음과 ‘그윈플렌’의 강인함을 표현한다. 바르지 않고 틀어진 의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바르게 서있는 건 ‘그윈플렌’ 뿐이다. 초승달처럼 찢어진 ‘그윈플렌’의 입을 관통한듯 의회 정중앙의 빨간 카펫의 계단은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라는 그의 말을 조롱하듯 혓바닥을 내뱉은 모양새다.

‘그윈플렌’을 괴물 취급하면서도 그에게 최고 작위를 수여한 ‘앤 여왕’과 앞에선 그를 위하는 척 굽신거리지만 속으론 깔보는 ‘페드로’의 위선 된 웃음의 입꼬리는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찢겼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그윈플렌’과 대조된다.

이들의 입은 스스로 찢은 추악함을 낱낱이 보여준다. 인간관계를 갑과 을로 구분해, 자신들만의 틀에 갇혀 자신보다 보잘것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업신여기는 가장 초라하고 추악한 인간의 숨은 본성을 고발한다.

찢어진 입을 닮은꼴은 작품 전체의 어둠만 드러내지 않는다. 희망의 메시지도 담겼다. ‘그윈플렌’과 ‘우르수스’, ‘데아’가 처음 만난 날에도, 이들이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 서로 용서하는 순간에도 머리 위엔 ‘그윈플렌’의 미소와 같은 초승달이 떠 있다.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올 때 검푸른 먹구름이 드리워져 슬픔을 예고한다. 하지만 초승달은 점점 큰 보름달이 돼, 가난하지만 따뜻함이 가득 찬 평범함 속에 행복을 전한다.

K-뮤지컬의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한 위대한 작품을 놓친다면 후회만 남을 뿐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웃는 남자’는 오는 3월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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