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기안84라고 자신의 상상이 이렇게 완벽히 현실과 맞닿을지 알았을까? 본인이 토로하듯 분명 몰랐다. 기괴하고 충격적인 세상이 현실에서 완벽히 구현됐다는 것이 보면 볼 수록 놀랍다. 부정적인 면이 없진 않지만, 긍정이 더 크다. 넷플릭스 ‘대환장 기안장’이다.

상상도 못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일단 숙박업소지만 주소가 없다. 망망대해에 떠 있기 때문이다. 숙박객은 현포항에 집결한다. 지예은이 몰고 온 보트를 탄다. 다만 손님은 바나나 보트다. 겨우 도착했는데 문이 없다. 입구는 클라이밍으로만 진입할 수 있다. 어른이고 아이이고 상관없다. 짐이 많아도 클라이밍이다. 딱히 방법이 없다. 화장실을 가려 해도 클라이밍 때문에 생각을 잘 해야 한다.

출구는 미끄럼틀이다. 자칫 실수로 미끄럼틀을 잘못 탄다면 바다에 풍덩 빠지게 된다. 밥 먹으러 주방에 갈 땐 봉을 타고 내려와야 하고, 밥을 먹고 올라갈 때 역시 봉으로 올라가야 한다. 힘과 기운이 제법 있어도 왔다갔다하면 지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잠은 테라스에서 자야 한다.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한다. 뜨거운 태양의 햇살이 알람이 된다. 더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다.

기안84도 사람이었다. 타협하려 했다. “1층에 문을 뚫어햐 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잡아준 건 진이다. “그러면 기안장이 아니지.”

결국 원칙대로 흘러갔다. 힘들고 지치는 구조 때문에 불평이 많아질 줄 알았는데, 협동심이 생겼다. 봉을 타는 데 재능이 있는 손님들이 손을 내밀었다. 홀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조차 함께 어울릴 수 있게 됐다. 유쾌한 웃음 사이에서 인간의 선함에서 나오는 감동이 느껴진다.

인간은 역시 적응하는 동물이었다. 더 끈끈해졌다. 도저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바뀌었다. 누구하나 찡그리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 같이 “그래 이게 기안이지”라는 의견으로 목소리가 모였다.

기안84는 기괴한 상상만 했을 뿐, 마음만은 누구보다 따뜻했다. 몸이 아픈 채로 아들 둘과 기안장을 찾은 40대 아버지에게 그림을 선물했고, 마지막 투숙객을 위해 폭죽을 선사했다. 짧은 시간 깊게 쌓인 추억 때문에 헤어질 땐 남는 자도 떠나는 자도 모두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렸다.

진과 지예은은 더할 나위 없는 사원이었다. 진의 원칙의 칼날은 숙박객에게도 여지가 없었다. “고객님 뭐하시는 거예요”라면서 클라이밍을 피해 미끄럼틀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을 막았다. 다 올라온 숙박객은 진의 불호령에 다시 내려간 뒤 클라이밍으로 올라왔다. 원칙을 지키는만큼 희생도 감수했다. 주방에서 1층으로 올라오는 손님을 위해 누구보다 많은 힘을 쓴 건 진이다.

지예은은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았다. 가끔 기안84에게 떼를 써 그를 흔들리게 했지만, 결국 사장의 선택에 승복했다. 손님들이 편하게 있도록 마음을 내준 건 지예은이다.

반응은 뜨겁다. 커뮤니티는 ‘대환장 기안장’ 글로 가득차 있다. 국내에선 공개 직후 1위를 기록했고, 글로벌 비영어권 부문에선 6위까지 올랐다. 기안84가 세계에도 통할 줄은 제작진도 몰랐다.

방송사에서 오랫동안 훈련된 정효민 PD의 인간적인 연출법이 기안84의 원시성을 완벽히 포장했다. 기안84를 누구보다 잘 활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한한 상상력이 이미 검증된 기안84라서 또 다른 지역의 또 다른 낭만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가 앞선다. 시즌2는 제작은 필수적이다. 마음 같아선 시즌10까지 그의 상상을 누려보고 싶다.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