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아직 저 살아있어요.”

배우 고소영이 유튜브에 남긴 첫 영상이다. 전성기 시절 스크린과 잡지 속에서만 보이던 그가 이제는 장을 보고 밥상을 차린다. 딸과 남편 장동건의 생일상을 준비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고소영만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신비로운 아우라로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던 여배우들이 하나둘씩 유튜브라는 창을 열고 자신을 꺼내고 있다.

81세 배우 선우용여는 ‘순풍 선우용여’라는 유튜브 채널을 오픈했다. 선우용여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오히려 지금이 더 ‘힙’하게 살아가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벤츠를 몰고 호텔에서 조식을 즐기기도 한다. 랄랄의 부캐 ‘이명화’와 이태원을 누비는 그의 모습은 오랜 세월 쌓인 관성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관능미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미숙도 유튜브에 둥지를 틀었다. ‘숙스러운 미숙씨’라는 이름의 채널에서 그는 “이제는 나를 더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흰머리가 자연스럽게 섞인 민낯, 명품 가방 사이에 놓인 에코백까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있는 담백한 일상이 화면 너머로 전해졌다. 빛나는 스크린 속 화려한 얼굴과는 또 다른 진짜의 얼굴, 꾸며내지 않은 고요한 하루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반응도 뜨겁다. 고소영은 한달만에 구독자 5만명을 달성했다. 선우용여는 공개 3주만에 19만 7000명, 이미숙은 공개 3일 만에 2만 7000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이처럼 오랜 시간 베일에 가려졌던 여배우들이 ‘신비주의’라는 껍질을 벗고 자신의 일상을 꺼내 보이기 시작한 이유는 더 이상 현실이 예전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는 제작 편수가 줄었다. 특히 40대 이상 여배우가 중심이 되는 서사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스포트라이트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그 순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백을 메운 이들이 택한 새로운 무대가 바로 유튜브다.

스케줄에 쫓기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의 속도와 목소리로 삶을 펼쳐낼 수 있는 공간. 연기를 벗어나도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과거 같으면 자연스럽게 은퇴 수순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시점에, 이들은 스스로를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일상을 소비 가능한 이야기로 만든다. 특히 그간 사적인 영역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인물이라면 그만큼 대중의 관심도 높다”고 말했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