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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퓌르트=스포츠서울 정재은통신원] 다시 승천한 블루드래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공수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더니 2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이자 시즌 4번째 도움을 해냈다.
이청용은 3일 오전(한국시간) 독일 퓌르트의 슈포르트파크 론호프에서 열린 2018~2019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 12라운드 그로이터 퓌르트와 원정 경기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 전반 37분 팀의 선제골을 도우면서 2-2 무승부에 힘을 보탰다. ‘택배크로스(골을 넣기 좋게 올려주는 크로스)’의 교과서였다. 역습 과정에서 페널티박스 오른쪽으로 이동해 공을 잡은 그는 문전으로 달려든 로베르트 테셰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각도를 정확하게 맞춰 둔 포처럼 이청용의 발을 떠난 공은 절묘한 궤적으로 골문 왼쪽으로 흘렀고, 테셰가 침착하게 차 넣었다. 나흘 전인 지난달 30일 얀 레겐스부르크와 11라운드 홈경기에서 ‘3개 도움’을 올리며 시즌 마수걸이 포인트를 올린 이청용이다. 이날 다시 한번 도움을 기록하면서 최근 물오른 컨디션을 증명했다.
공격포인트로만 이청용을 설명할 수 없다. 5경기 연속으로 선발 출전한 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공수 전체에 이바지하는 키플레이어였다. 전반 초반부터 2선 전 지역을 뛰어다니며 송곳 패스로 공격의 물꼬를 텄다. 변함없이 코너킥 등 세트피스를 도맡았고, 수비 지역까지 내려와 수차례 헤딩 클리어도 선보였다. 전반 26분엔 마치 센터백 자원처럼 눈 깜짝할 사이 최후방 수비 라인까지 내려와 상대 크로스를 머리로 저지하기도 했다. 베테랑 이청용의 이러한 헌신이 있었기에 보훔이 초반부터 볼 소유 시간을 늘리면서 그로이터 퓌르트를 몰아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보훔은 루카스 힌터지어와 톰 바일란트 등이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잡고도, 몸을 던진 상대 수비와 골키퍼 선방에 막혀 ‘0의 균형’을 깨지 못했다. 자칫 말릴 수 있었던 경기 분위기를 단번에 뒤집은 건 이청용의 크로스 한 방이었다. 역습 상황에서 이청용이 테셰의 골을 도우며 숨통을 트이게 했다. 기세를 올린 보훔은 전반 추가 시간 시드니 샘의 왼쪽 낮은 크로스를 힌터시어(리그 8호골)가 오른발 추가골로 연결했다.
후반엔 이청용의 노련미가 돋보였다. 지난 레겐스부르크전에서 두 골을 앞서고도 뒷심 부족으로 비긴 보훔 수비는 이날 또다시 흔들렸다. 후반 10분 프리킥 상황에서 루카스 구가니히에게 헤딩 만회골을 허용했다. 그로이터 퓌르트의 반격은 갈수록 거셌다. 이때 이청용은 볼 소유 시간을 늘리면서 경기 템포를 조율했다. 후반 중반엔 상대 가나 출신 공격수 다비드 아탕가와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로이터 퓌르트의 공격 흐름을 끊고, 동료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었다. 후반 32분엔 예리한 코너킥으로 동료 수비수 팀 호글란트가 헤딩 슛을 끌어냈다. 그러나 그의 투혼에도 보훔은 끝내 후반 추가 시간 동점골을 내줬다. 수비 뒷공간이 무너지며 다니엘 케이타-루엘에게 실점했다. 막판 힘겨루기에서 이청용은 다시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시즌 4번째 경고를 받았다.
보훔의 무승부는 아쉬웠으나 이청용은 존재가치를 확실하게 알렸다. 새 시즌을 앞두고 3개월여 팀을 찾다가 뒤늦게 보훔 선수단에 합류한 그가 이르게 팀에 녹아든 건 로빈 두트 감독의 영리한 활용 능력도 한몫했다. 두트 감독은 이청용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때부터 관심을 뒀다. 지난 9월 초 이청용과 첫 훈련을 한 뒤 “축구 지능이 매우 높은 선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곧바로 경기에 투입됐고 최근 선발 자리를 꿰찼다. 애초 축구 전문가들은 체격은 작지만 기술 축구로 도르트문트에서 성공을 거둔 일본의 가가와 신지처럼 이청용의 기술도 독일 무대에서 통할 것으로 내다봤다. 두트 감독도 이청용의 기술과 전술 인지력을 주목하면서 주포지션인 측면에 두지 않고 자유자재로 뛸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배치했다. 신의 한 수가 됐다. 전성기 시절보다 체력이나 폭발력은 떨어졌지만 이청용은 노련미를 앞세워 특유의 질 높은 패스와 경기 운영 능력으로 부훔에 힘이 되고 있다.
최근 눈부신 활약으로 이청용은 내달 5일 발표하는 ‘벤투호 3기’ 승선 가능성을 높였다. 지난 시즌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해 올여름 러시아 월드컵 최종 엔트리 승선이 불발된 그는 이후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그러나 새 무대에서 진가를 증명한 만큼 A대표팀 합류를 기대할만하다. 무엇보다 호주 원정을 앞둔 벤투호에 이달 손흥민이 합류할 수 없어 대체자를 두고 이청용이 0순위로 거론됐다. 벤투 감독이 지향하는 기술 축구 유형에 적합하고 2선 전 지역을 뛰는 멀티 능력을 보유한 이청용이어서 더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