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작품 속 배우 김남길은 늘 강했다.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MBC 드라마 ‘선덕여왕’(2009)의 화랑 비담 이후 14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멋있고 강하다.

SBS ‘나쁜남자’(2010)에서 지략과 매력으로 복수에 성공하는 스턴트맨을 연기할 때도, 언더커버 형사였던 영화 ‘무뢰한’(2014)은 물론 사제였던 SBS ‘열혈사제’(2019)에서도 그는 강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2022)에서는 내면이 단단했고, 미치광이가 된 영화 ‘보호자’(2023)에서도 막강한 존재였다.

무술 감독이 자신보다 액션을 잘하는 배우로 꼽을 정도니, 그가 강한 인물을 맡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번엔 1920년대로 돌아가 장총을 들었다. 넷플릭스 신작 ‘도적: 칼의 소리’에서다.

김남길은 극중 노비로 태어나 일본군이 됐다가, 조선인들에게 칼을 겨눈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머나먼 간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이윤을 연기했다. 늘 한 번씩은 웃음을 만들었던 그가 이번에는 웃음기를 싹 뺀 리더로 다가왔다. 다만 독립군이 아닌, 도적이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에서 독립군이 아닌 도적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은 주연배우인 김남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김남길은 “일반적이지 않은 시대극이라서 선택했다.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선악으로 구분 짓지 않고 인간을 표현한 것에 매료됐다”고 출연 배경을 밝혔다.

◇“야망과 욕망으로만 얽힌 한-중-일, 날 끌어당겼다”

‘도적: 칼의 소리’는 1920년 간도에 모인 한-중-일을 그렸다. 피난 온 조선인과 이들을 말살하려는 일본 순사와 군인,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이득을 보려는 중국인이 담겼다. 모두 목적은 생존이다. 역사적 맥락보다 거대한 흐름에 운명을 맡긴 인간 중심 이야기가 그의 구미를 당겼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독립군이 나오면, 이야기가 획일화될 수밖에 없어요. ‘도적: 칼의 소리’는 시대를 관통해서 처절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비춘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독립군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많은 일을 한 건 알지만, 작품에선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이 드라마에도 조선인을 죽이려는 일본 순사가 나오지만, 매우 악한 건 아니다. 지시받은 약자일 뿐이다. 돈을 많이 벌고 집에 가기 위해 조선인을 잡는 게 일인 것이다. 등 떠밀려 참전한 인물도 보인다. 이 시대를 그린 작품들이 일본 군인에게 부여하지 않은 서사다.

“천황 폐하에 대한 애국심이 있는 일본인보다는, 집에 돌아가고 싶은 모습을 더 많이 표현했어요. 억지로 총과 칼을 든 인물들도 보이고요. 제국주의에 뜻을 바친 군인들도 있지만, 먹고 살기 위했던 군인이 더 많죠. 이전에 나왔던 일제강점기 작품엔 없었던 그림이잖아요. 각자 야망을 추구하면서 서로 얽히는 포인트가 새롭게 다가왔어요.”

◇“나긋한 우성이형, ‘연습만이 살길이야’라고 하더라”

광활한 평야를 달리는 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뿌연 연기...드라마 ‘도적:칼의 소리’는 한국형 웨스턴 장르를 표방한다. 미국 서부에서 즐겨 입었던 의상과 모자는 물론 온갖 무기가 등장한다. 이윤은 장총을 주로 쓴다. 놀랍게도 총을 쏠 때마다 한 번씩 돌린다. 누가 봐도 강렬한 멋이 전달되면서 한편으론 “급박한 상황에 너무 많이 돌리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도 든다.

“미국 영화 보면 앞에서 총을 쏘는데, 총을 돌리면서 위협을 해요. 저 역시도 이렇게까지 돌려야 하나 싶은데, 또 돌리지 않으면 스타일이 없어요. 너무 밋밋해요. 과한 걸 알면서도 계속 돌렸죠. 그러지 않으면 그림이 너무 안 예뻐요.”

국내에서 웨스턴 장르로 성공한 작품은 김지운 감독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이다. 레퍼런스로 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황준혁 감독도 레퍼런스를 삼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두 작품 내엔 닮은 구석이 적지 않다. 특히 말을 타고 총을 돌리는 주인공이 닮았다. 장총 액션에 어려움을 느낀 김남길은 친분이 깊은 선배 정우성의 태도를 배우려고 했다.

“총 돌리는 연습을 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우성이형한테 직접 물어봤죠. ‘어떻게 그렇게 총을 잘 돌릴 수 있었냐’고요. 나긋하게 ‘될 때까지 해’라고 하더라고요. ‘연습만이 살길’이라고. 그래서 계속 연습했어요. 뻔한 말이긴 한데, 진심이기도 했어요. 계속 돌리니까 몸에 붙더라고요.”

‘도적: 칼의 소리’는 이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거처에 일본군이 쳐들어오고 큰 위기에 놓여있을 때, 조선에 갔던 그가 돌아오면서 끝을 맺는다. 다분히 시즌2를 의식한 엔딩이다. 김남길은 시즌2를 꼭 찍고 싶다는 갈망을 드러냈다.

“시즌2는 정말 하고 싶어요. 우리가 담지 못한 걸 풍부하게 담았으면 했어요. 작가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시즌2에선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요. 넷플릭스 관계자들에게도 꾸준히 언급하고 있어요. 애초에 20부작으로 기획된 작품이고, 느린 전개의 미학이 있죠. 내년 가을에는 ‘도적: 칼의 소리’를 촬영하고 있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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