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지난 16일 렛츠런파크 서울엔 11세 노장 ‘서울탱크’가 8두 중 6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평범해 보이는 성적이지만 11세까지 현역으로 뛰는 모습에 많은 경마 팬은 감동했다. 서울탱크는 이날도 변함없는 투지로 힘찬 발굽을 내디뎠다. 일반적으로 경주마는 2세에 데뷔해 3~5세 전성기를 거쳐 6~7세에 은퇴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수록 근력과 체력이 저하되기에 11세까지 현역으로 뛰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서울탱크는 화려한 우승 경력이나 1등급마의 타이틀은 품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2세부터 11세까지 근 10년간 꾸준히 출전하며 완주의 미학을 보였다. 총 90차례 경주를 통해 부상과 슬럼프를 이겨낸 서울탱크의 커리어는 우승보다 값지다. 이런 서울탱크의 스토리는 자연스럽게 경마 역사상 가장 인상 깊은 언더독을 떠올리게 한다.

◇0승 101패 전설, 위대한 똥말 ‘차밍걸’
‘차밍걸’은 그중 특별하다. 한국 경마 역사에 ‘0승 101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이름을 남겼다. 숫자만 보면 실패처럼 보이지만, 흔치 않은 끈기의 증거다. 대부분 말은 통상 50회 정도 경주를 치르면 은퇴한다. 또 성적이 나오지 않을 경우 조기 은퇴도 한다. 하지만 차밍걸은 부진한 성적에도 매번 게이트 앞에 섰고, 다시 희망을 품으며 출발대를 나섰다. 뒤처지고 또 뒤처지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차밍걸의 질주는 ‘완주 자체가 승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차밍걸의 얘기는 어린이 동화책으로도 출간하고 창작공연으로 제작됐다. 많은 이들에게 뜨거운 울림을 줬다.

◇불가능을 가능으로…장애 극복한 ‘루나’
‘루나’의 삶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기적의 서사다. 2001년 제주에서 태어난 루나는 선천적으로 왜소하게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허리 인대 염증으로 다리를 절뚝거리기까지 했다. 경주마로 뛰기 어렵다는 평가가 따랐지만, 김영관 조교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세심한 관리와 맞춤형 재활 훈련 끝에 루나는 2004년 데뷔했고, 김영관 조교사에게 첫 대상경주 우승까지 안겨줬다.
이후 2009년까지 국내 최정상급 암말로 활약하며 몸값의 78배에 달하는 상금을 벌어들였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마다 터져 나온 팬의 함성은 단순한 환호가 아니라, 역경을 이겨낸 용기에 대한 찬사였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 ‘마이티젬’
마이티젬과 그의 딸 마이티러브의 얘기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감동 드라마다. 마이티젬은 장거리 경주에서 안정적인 실력을 발휘하며 KNN배(GⅢ) 준우승, 경남도지사배(GⅢ) 입상 등의 성과를 거뒀다. 마주와 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마이티젬에게 절망의 순간이 찾아왔다. 경주 중 발생한 다리 분쇄골절. 사람으로 치면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정도의 심각한 부상이었다. 수의사도 회복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에 마이티젬의 마생도 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조병태 마주는 말을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다리에 금속 플레이트를 삽입하는 큰 수술을 진행했고 재수술도 수차례 했다. 긴 치료와 재활 끝에 기적적으로 회복한 마이티젬은 제주도로 휴양을 떠났고, 목장에서 ‘마이티러브’를 출산하며 삶의 의지를 더욱 단단히 다졌다. 어미보다도 작은 체구지만 영특함과 불굴의 정신을 물려받은 마이티러브는 올해 신년 첫 경주에서 당당히 승리를 거두며 조병태 마주와 서홍수 조교사에게 눈물겨운 감격을 선사했다.
어미의 절망적 부상에서 시작된 얘기가 딸의 찬란한 승리로 완성되는 순간, 경마장은 뜨거운 감동으로 물들었다. 마이티젬 모녀의 스토리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절망의 끝에서도 희망은 피어난다는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