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이렇게 페이소스가 짙은 배우였을 줄이야. 박지환은 웃기기만 하는 배우였다. 특유의 독특한 얼굴을 활용한 코미디 장르에 주로 활용됐다.
딱히 잘못된 건 아니지만, 능력이 출중한 배우의 역량을 그저 단면만 빌려 쓰려 했던 국내 창작자들이 얼마나 게을렀는지 디즈니+ ‘탁류’를 보면 알 수 있다.
‘탁류’ 속 무덕(박지환 분)은 자존심이 조금도 없는 인물이다.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고 와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해맑게 웃고 있다. 보고 있으면 답답하기만 하다. 강자한텐 약하지만, 약자한텐 권위만 앞세우는 모습도 영 보기 안 좋다. 남들이 멋있게 하는 행동을 소화하지도 못한 채 따라하는 건 우습다. 뭐 하나 좋을 점이 없는 데도 딱하고 애잔하다. 마음 속 깊은 곳부터 측은지심이 몰려온다.
얼굴이 다양했다. 웃기기도 했고 울리기도 했다. 이전의 박지환과는 전혀 달랐다. 박지환은 모든 공을 추창민 감독에게 돌렸다. 박지환은 최근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제 해석은 너무 짧았어요. 감독님의 식견과 경험이 무덕이를 끌어올렸어요. 한두 번 부딪혀 보니까 엄청난 고수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바로 무릎꿇고 믿고 따랐죠”라고 말했다.

정말 비루한 인물이다. 하수구 냄새가 진동할 것 같은 마포 나루에서 온몸에 흙을 묻혀가며 뒹구는 게 일상이다. 일을 잘 풀어내는 능력이 없어 후배들에게 무시를 당하기 일쑤고, 때론 동생들 앞에서 얻어맞기도 한다. 자존심이 있으면 저항도 할텐데, 그런 기백 따윈 없다.
“무덕이는 동서남북 영물의 꼬리와 대가리, 몸통을 조악스럽게 붙인 인형 같아요. 요상한 놈이죠. 매우 격이 떨어지고요. 하나도 웃을 일이 없는데 좋아하는 거죠. 무덕이가 가진 비루함 속에서 평범함을 찾으려 했어요.”
몇몇 장면은 놀랍다. 입을 쭉 내밀고 애처롭게 땅으로 꺼진 시선을 보일 때 ‘좀 잘 좀 살지’라는 생각이 든다. 응원도 하게 된다. 무덕이가 등장하는 내내 묘한 서글픔이 나온다. 박지환이 만든 짙은 감정이다.
“추창민 감독님은 작은 깃털 하나도 세심하게 터치하는 분이세요. 장인 정신으로 모든 상황을 조율해요. 누군가는 잔인하게 오래 찍는다고 하는데, 저는 찍으면서 계속 성장하는 기분이 드니까 행복하더라고요. 드라마 타이즈가 아니라 영화처럼 찍으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깊이 있는 작품이 나온 것 같아요.”

앙상블이 놀랍다. 왈패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경전 그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의 움직임이 시청자를 조선시대 중기로 집어넣는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모였어요. 왈왈이 역의 박정표나 개춘 역의 윤대열은 이미 연극판에선 유명한 배우예요. 일찍 친해져서 서로 합을 많이 맞췄죠. 뛰어난 배우들을 완벽히 조율한 게 추 감독님이에요. 추 감독님의 지휘 아래에서 명 연기가 나왔다고 봐요.”
2006년 데뷔해 벌써 20년 넘게 연기로 먹고 사는 베테랑이지만,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위인들의 삶을 살피고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려고 밤을 샌다. ‘탁류’에서 배운 모든 성장을 새로운 작품에서도 이어가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혼자 준비하는 게 최선은 아니다는 주의다. 연기란 상대방과 에너지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는 기술이어서다.

“어차피 연기란 상대방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저 혼자만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매우 섬세하게 그 흐름을 타야 돼요. 연기 잘한다고 칭찬받았다 해서 오만해지면, 파멸에 이를 것이에요. 하하.” 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