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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정하은기자] 방탄소년단을 세계 최정상 그룹으로 키운 하이브가 한국형 아이돌 시스템을 구축한 한류 본산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K팝 시장이 들썩이는 가운데 정작 K팝 성공의 실제 주역인 아티스트와 팬덤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일 방탄소년단(BTS)의 성공으로 단번에 기존 3대 기획사(SM, YG, JYP)를 넘어선 하이브는 공시를 통해 28년 역사의 K팝 왕좌 SM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는 기습 발표로 화제를 모았다. 경영권을 놓고 SM 경영진, 주주 등과 갈등을 빚던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이 하이브로 돌아가면서 벌어진 일이다. 국내 K팝 시장의 양대 축이라 할 두 회사의 결합은 K팝 시장의 전환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간의 시선은 이제 SM의 경영권 승기를 누가 잡을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SM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인 이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을 매입한 하이브와 SM 현 경영진과 손잡고 2대 주주로 올라선 카카오가 다음달 말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신임 이사 자리를 두고 표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주가도 16% 넘게 껑충 뛰었다.
그러나 정작 팬들은 국내 K팝 시총 순위 1·2위의 결합에 발을 동동 구르는 모양새다. SM이 하이브 산하 레이블로 편입되면 아티스트의 재계약이나 복귀 여부가 불투명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SM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샤이니, 엑소 등 10년차를 훌쩍 넘긴 ‘장수돌’이 많은데 자의든 타의든 하이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되고, 이들의 재계약 역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쟁 구도에 있던 하이브와 한솥밥을 먹게 되면서 SM 소속 아티스트들의 내부 반발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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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은 개별 아티스트의 팬들 뿐만 아니라 일명 ‘광야’라 불리는 세계관과 함께 SM 자체에 대한 팬덤의 충성도도 높은 편이다. 이는 28년간 쌓아온 SM의 결실이기도 하다. 오래된 동방신기 팬 A씨는 “SM 아티스트와 음악은 색깔이 분명해서, 한번 SM 소속 그룹을 좋아하게 되면 SM의 다른 그룹들까지 마치 ‘가족’처럼 좋아하고 팬들끼리 똘똘 뭉치는 성향이 있다”면서 “이번 하이브의 인수로 팬들의 결속력까지 잃을까 걱정된다. 특히 경쟁사인 하이브에 SM이 넘어갔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는 팬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SMP’(SM Music Performance) 창시자인 유영진 이사가 이탈을 예고하는 등 SM 내부가 분열되면서 SM의 세계관이나 음악성까지 잃을까 팬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이브의 독과점으로 그룹 색깔이 획일화되거나 굿즈 등의 가격 책정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우려도 존재한다. 박희아 대중음악 평론가는 “팬들은 자신들이 좋아해온 SM이라는 레이블의 정체성이 흔들릴까 걱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라며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누구 편에 서야 할지에 대해 혼란스러울 거다. 자신들이 내리는 선택에 따라 팬덤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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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두 공룡의 만남을 반기는 팬들도 있다. 그간 아티스트의 사건, 사고와 사생활을 둘러싼 문제 등이 빈번히 발생했던 SM이 아티스트 권익 보호에 단호하게 대처해온 하이브와 만나 SM 소속 아티스트들에 대한 보호가 강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음악 평론가는 “하이브의 SM 인수에 부정적인 반응만 있진 않다. SM의 성과도 크지만 한편에는 소속 아티스트에게 여러가지 문제가 불거져 속앓이를 해왔는데, 하이브에 들어가면 나아지지 않겠냐는 기대감도 있다”며 “또한 자체 콘텐츠 등 하이브가 지금까지 해왔던 대중과 아티스트의 소통이 SM보다 훨씬 활발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대감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하이브와 SM 아티스트 간의 컬래버레이션이라든지 새로운 그룹 탄생에 대한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하이브의 폭발적인 성장이 이어진 지난 몇년간 SM이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안팎으로 존재했다. 어떤 방향으로든 SM에게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티스트와 팬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기업의 인수합병(M&A)과 그에 따르는 리스크는 시장이 커질수록 겪게 되는 당연한 절차로 여겨지지만, K팝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좀 더 세심한 관리도 필요하다. 기업의 경제적 가치나 매출 등 수치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와 이사, 주주 등 경영진들의 비전 만큼이나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는 팬들의 의견과 시각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SM 관계자는 “SM에선 지난해에 비해 올해 더 많은 팀의 컴백을 준비하고 있었다. 글로벌 진출의 전방에 서있는 NCT, 슈퍼엠, 엑소부터 새로운 데뷔 팀들도 있는데 갑작스러운 회사 상황의 변화로 내부적으로도 새로운 플랜들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우려하는 팬심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주주총회 전까지 아티스트와 팬들의 의견을 수렴한 성명문을 발표하거나 각 레이블의 운영 방식을 이사진의 변화와 관계없이 유지한다는 주주 측의 확인이 필요해보인다”라고 말했다.
jayee212@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