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러 모처럼 극장에 갔다가 영화 중반부터 눈물을 흘리며 답답한 가슴을 한참 쓸어내려야 했다.

그 애니메이션은 주인공이 지진을 일으키는 미지의 존재를 막으면서 일본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계속 이동하는 모습이 그려졌는데, 영화 중반쯤 바닷가에 큰 방조제를 세우는 공사 현장 모습과 일본 동북부에 위치한 ‘센다이’라는 도시 이름이 나온다.

그 순간 필자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마구 터져나와 온 몸을 짓눌렀다. 아니, 기억이 떠오르기 전부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2년 전,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진도 9.1의 거대지진. ‘동일본대지진’이라고 이름지어진 이 최악의 자연재해는 거대한 쓰나미까지 동반하여 2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약 300조 원에 가까운 재산피해를 낸 것으로 알려져있다. 필자는 바로 그 날, 도쿄에 있었다.

눈을 감으니 마치 어제 일처럼 모든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던 도쿄에 전기가 끊겨 깜깜해진 모습, 술을 제외한 모든 마실 것들과 먹을 것들을 사재기해 텅빈 마트와 편의점들, 사람으로 꽉 찬 플랫폼에서 한시간에 하나 올까말까한 전철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 친지와 연락하려고 해도 연결이 되지 않는 휴대폰들, 쩍쩍 갈라져버린 땅, 마치 장난감처럼 쓰러져있던 육교, 높은 빌딩을 받치는 기둥에 금이 가 있던 모습 등. 지진과 쓰나미가 직접 강타한 동북 지방에서 멀리 떨어진 도쿄가 이 정도였다.

공포의 순간은 계속 이어졌다. 여진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강한 흔들림에 숙소 침대가 좌우로 미끌릴 정도였고 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이 파괴되며 방사능이 유출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필자의 학부 전공이 원자력공학이다 보니 유출된 방사능량을 보며 그야말로 혼비백산 했고 어떻게든 빨리 이 곳에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됐다.

지인의 도움으로 겨우 비행기표를 구한 뒤 도착한 나리타 공항은 인파로 아비규환이었다. 비행기 이륙 직전까지도 여진이 있었고 이륙이 완전히 이뤄진 뒤에야 필자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공포스러운 기억은 12년 동안 봉인되어 있었다. ‘동일본대지진’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보기 전까지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란 이런 것이다. 상처를 완전히 잊었다고 또는 극복했다고 스스로는 생각하겠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갑자기 튀어나와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는 것. 그리고 이러한 PTSD는 본인 이외 다른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 한다. 필자도 위의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했는데 그 중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큰 지진이었다는 건 알지만 그 당시 그 현장에서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몇 주 전 이 칼럼을 통해 폭력 피해에 대한 PTSD를 극복하려는 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호신술 지도자 역시 이런 부분을 자세히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필자 역시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당장 나 자신에게 PTSD가 있다는 것도 몰랐으니 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자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더 나아가 폭력에 노출됐던 이들의 PTSD를 어떻게 찾아내고 극복하도록, 그리고 똑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시켜야 할까.

공포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경열 JKD KOREA 이소룡(진번) 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노 관장은 기자 출신으로 MBN,스포츠조선 등에서 10년간 근무했으며, 절권도는 20년 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현재는 서울 강남에서 JKD KOREA 도장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