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5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부처님 공양을 국수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1973년, 쌀을 덜 먹기 위한 대대적인 혼·분식 장려운동이 펼쳐지고 있었다. 절집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해 6월 29일, 불교계는 전국불교지도자대회를 열고 정부의 혼·분식 방침에 따라 공양에 잡곡밥이나 국수 등을 올리기로 했다.

부처님도 하얀 쌀밥 대신 잡곡밥이나 분식을 드시게 됐으니 일반 국민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부족한 쌀 문제 해결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쌀은 우리 국민의 주식(主食). 50년전만 해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배부르게 먹는 것이 소원이었고 자식 입에 흰쌀밥 들어가는 모습이 부모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늘 쌀이 부족했다. 적어도 1970년대 중반까지는.

그래서 혼·분식 장려 운동이 추진되었고 ‘혼분식 장려 경진대회’, ‘혼분식 요리개발’, ‘분식의 날 지정’ ‘혼분식 노래 보급’ ‘도시락 검사’ 등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 선데이서울 238호(5월 6일)는 1973년 4월에 열린 ‘제1회 새마을 식생활 개선 전국 주부경진대회’ 소식을 실었다. 한마디로 쌀 위주의 식생활을 바꾸자는 취지로 농수산부가 주관하는 대회였다.

이 대회에 한국부인회 주부 1500여 명이 참가했다. 국가적 과제를 실천하는 대회였으니 성황을 이룬 것은 당연했다. 대회 성격상 ‘귀한’ 쌀이나 고기를 쓰지 않고 값이 싼 식물성 식재료로 만드는 요리가 대상이었다. 여기에 지방 특색까지 담긴 메뉴가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은 틀림없었다.

결과는 1등에 강원도 오색범벅, 2등은 부산 영양콩장국, 3등은 서울 성북구 현미 잡곡밥이 뽑혔다. 예상대로였다. 1등상을 받은 호박범벅은 요리법도 소개했다. 요새로 치면 건강 다이어트 식단이었던 셈이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 증산이 따라가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이런 행사가 열렸고, 혼·분식을 장려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속출했다.

혼식의 잡곡 비율을 30% 이상으로 정해 공표했고 학생들은 매일 도시락 검사를 받아야 했다. 밥을 다 먹었느냐 안 먹었는냐로 검사를 받는 게 아니라, 쌀밥만 싸오는 걸 단속하기 위함이었다. 생일날 쌀밥 도시락이라도 가져온 날이면 정부 시책을 따르지 않는 나쁜(?) 아이로 찍히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분식의 날’도 있어서 짜장면, 국수, 수제비, 라면 같은 밀가루 메뉴를 권장했다. 군대에서 일요일 아침은 늘 불어 터진 라면이었다. 모두 한 시대의 추억으로 남았다.

1972년 4월에는 ‘즐거운 혼·분식’ 노래가 선을 보였다. 계몽적인 내용을 담은 일종의 캠페인송이다. 이원수 선생이 가사를 짓고 김동진 선생이 작곡했다. 부른 기억에도 없지만, 실제적 효과는 차치하고라도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이런 이벤트도 필요했을 것이다.

후렴구에 ‘쑥쑥 키가 큰다. 힘이 오른다. 혼식 분식에 약한 몸 없다’는 내용이 반복되고, 가사에는 ‘튼튼한 육체’ ‘흰쌀에만 마음 쏠리던 연약한 지난 날, 이제는 안녕’ 등 쌀밥을 좋아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혼·분식이 좋다는 것을 찬양(?)하고 있다.

연약했던 몸도 튼튼해지고 키도 쑥쑥, 살림살이도 넉넉해진다니 만병통치약같은 내용이다. 먹고 싶은 쌀밥 대신 혼·분식을 하자는 것이니 노래를 부를 마음도 썩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은 건강을 위해 잡곡밥을 애써 챙겨먹지만, 그때는 윤기 자르르한 ‘흰쌀밥’이 최고던 시절이다.

그로부터 50년, 벼농사는 증산에서 감산 시대로 접어들었다. 쌀 소비를 위한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 얼마나 넘치면 보관료가 무섭다고 난리다. 보리나 콩, 밀 등 잡곡을 먹자고 외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상이 바뀌었다. 배고팠던 시대를 견뎌온 사람들로선 격세지감이란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늘 모자랐던 쌀 문제는 1972년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해결했다. 식성도 변하고 식생활의 변화로 쌀 소비는 계속 줄고 있다. 1992년 연간 112.9㎏이었던 1인당 쌀 소비량은 2022년 56.7㎏으로 반 토막 났다.

쌀이 주식인 대만, 일본보다는 많이 먹는다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쌀 생산량이 늘면서 그동안 묶여 있던 쌀 관련 규제도 하나, 둘 풀렸다. 한동안 요란스럽게 추진되었던 혼분식 장려 운동이 1977년 1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다. 도시락 검사도 사라졌다.

그해 12월 8일에는 14년 만에 쌀 막걸리가 부활했다. 밀가루 막걸리를 먹던 시대가 끝나고 진짜 막걸리다운 막걸리를 먹게 된 것이다.

부족한 쌀문제 해결을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냈던 우리가 이제는 쌀 소비 아이디어를 백방으로 찾고 있다. 50년 전, ‘제1회 새마을 식생활 개선 전국 주부경진대회’와 같은 행사도 전설로 남게 되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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