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 호신술을 배우는 여성 수련생들에게 우스갯소리처럼 항상 말하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따귀를 때리는 동작을 막거나 피하려고 할 때 남성의 것이 쉬울까, 여성의 것이 쉬울까라는 것이다.

대부분은 여성쪽일 것이라고 답한다. 과연 그럴까?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서 지금 직접 한번 실험을 해보자.

필자의 오랜 경험상 남성에게 따귀를 때려보라고 하면 팔을 올려서 뒤로 젖혔다가 때리려고 한다. 마치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듯이. 상대를 강하게 때려야 한다는 남성의 DNA에 새겨진 본능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여성들은 허리 높이에 있던 손이 곧바로 상대의 뺨을 향해 올라간다. 그리고 팔에 과도하게 힘을 주지 않는 대신 허리의 회전으로 손이 상대의 뺨에 닿도록 거리나 각도 등을 조절한다.

뒤로 한껏 젖혔다가 오는 팔을 대비하기가 쉬울까 밑에서 곧바로 올라오는 팔을 대비하기가 쉬울까. 전혀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느쪽이든 막거나 피하기 어렵겠지만, 호신술 수련을 어느 정도 꾸준히 한 사람이라면 팔을 뒤로 젖히는 동작은 필자가 항상 강조한 ‘준비동작’이기 때문에 그만큼 대비가 쉬워진다.

그래서 드라마의 수많은 남성 캐릭터들은 여성의 따귀를 못 피하고 찰지게 맞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힘이 빠져 있는 팔이 허리 회전에 의한 체중 전달과 만나면, 무시무시한 파워를 낸다. 그래서 여성에게 따귀를 맞으면 한방에 입안이 찢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갑자기 따귀 때리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나를 위협하는 상대를 제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격을 해야 할 때 ‘주먹으로 때린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좋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누군가를 손으로 공격한다고 하면 주먹부터 쥐려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가 어린 시절 쉽게 접할 수 있는 태권도는 손날로 치기, 손바닥으로 치기, 손끝으로 찌르기, 팔뚝으로 막거나 치기 등 주먹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무기를 사용했다.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 무술들은 손을 더 다양하게 사용한다. 손바닥도 여러 부위로 구분해서 사용하고, 손가락으로 꽉 쥐고 누르거나, 뜯어내거나 손톱으로 할퀴거나 후벼파거나 등 보기만 해도 “아프겠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방법들을 사용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먹으로 치는 것은 손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무기들 중 하나일 뿐이며 또 제한사항이 가장 많은 무기다. 오히려 주먹으로 치는 것을 머리에서 지우는 순간, 위급상황에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많아진다.

일단 주먹으로 친다는 것은 제대로 익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주먹을 쥐었을 때 봉긋하게 올라오는 권두라고 불리는 부분을 정확하게 상대에게 접촉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하고 타격 순간 손목을 다치지 않기 위해 손목을 고정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권두로 때려야 한다는 점 때문에 파워를 제대로 낼 수 있는 간격이나 각도에 제한을 받아 상대의 위치에 따라 팔이나 몸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도 단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주먹 자체가 부상당하기 쉽고, 상대의 타겟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복싱이나 종합격투기 경기에서 글러브를 착용하는 것은 맞는 사람을 보호하는 목적도 있지만, 때리는 사람의 주먹이 부서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만약 복싱에서 상대를 KO 시킬 만한 강한 펀치를 맨주먹으로 펼치면 상대의 머리뼈와 부딪히는 순간 내 주먹도 부서진다. 맨주먹으로 시멘트 벽을 한번 때려보길. 또 글러브가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내 주먹을 때리면 그 고통 때문에 순간 내 움직임이 멈출 수도 있다.

수많은 무기 중 손바닥만 하더라도 앞서 얘기한 주먹의 단점이 없다. 앞으로 손을 뻗어 때리는 경우 주먹보다 손바닥으로 칠 때 손목을 고정하기가 쉽고, 앞으로, 좌우로 공격할 때도 주먹을 쓸 때만큼 몸을 틀어야 할 필요가 없다.

또 손에 힘을 빼고 펴고 있는 만큼 충격을 흡수하기도 쉽고 손바닥으로 치려다가 손날로, 혹은 손끝으로 쥐어뜯기, 할퀴기, 찌르기 등으로 바꾸는 것도 주먹보다 훨씬 편하게 할 수 있다.

쥐어뜯기나 할퀴기, 찌르기 등은 주먹으로 때려서 상대에게 피해를 주기 어려운, 상대와 아주 가깝게 붙은 상황에도 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같은 시간을 투자한다면 주먹보다 다른 무기를 연습하는 편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에 더 빨리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방식들은 태권도, 합기도 등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접할 수 있던 무술들, 그리고 각국의 전통무술에 모두 존재한다. 하지만, 격투스포츠의 인기가 높아지며 ‘때리는 건 주먹으로’라는 고정관념이 생겨버렸다.

주먹을 잠시 머릿속에서 지워보자. 그리고 손바닥을, 손날을, 손가락 끝을 사용하는 공격을 연구해보자.

노경열 JKD KOREA 정무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