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저변 속 쾌거

‘가시화’의 중요성

시·도 단체, 국민적 관심 필요

[스포츠서울 | 황혜정 기자]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청소년 국가대표팀이 지난 25일 ‘2024 강원 청소년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주관 대회에서 한국이 메달을 목에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4일 ‘난적’ 중국과 준결승에서 6-4로 이기자 선수들은 링크장으로 쏟아져 들어와 결승 진출 기쁨을 나눴다.

현장에서 감격적인 순간을 지켜보며 열악한 저변 속에서도 큰 성과를 낸 어린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면서 지난해 여름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바로 이 장면이다.

지난해 5월28일, 양상문 감독이 이끈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은 ‘난적’ 필리핀을 만나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벌였다.

이날은 꼭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다. 승리하면 대표팀은 조별리그 2승1패로 일본(조 1위)에 이어 2위로 슈퍼라운드에 진출해 세계대회(2024 여자야구 월드컵 예선) 티켓을 얻어낼 수 있었다.

야구 대표팀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싸웠다. 상대의 끊임없는 신경전에도 휘말리지 않고 한국만의 치고 달리는 작지만 빠른 야구를 보여줬다.

24일 아이스하키 준결승도 비슷했다. 중국은 2골을 먼저 넣고 앞서가자 고의로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조급해하지 않고 짜임새 있는 공격을 펼쳐 단숨에 3골을 넣고 역전에 성공했다.

야구나 아이스하키를 하는 여성은 보기 드물다. 사회인 야구 기록 플랫폼인 ‘게임원’에 등록된 선수는 63만2532명(2024년 1월27일 현재) 여성 선수를 제외해도 63만 2400명가량의 남성 야구인이 있다. 여성은 904명에 불과하다.

아이스하키도 마찬가지다. 아이스하키 등록 선수는 3352명인데 반해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는 501명에 불과하다(2023년 12월31일 현재). 등록 인구의 15%만이 여성인 셈이다. 이중 성인이 되고 나서 아이스하키를 계속하는 여자 선수는 더 드물다. 501명 중 431명이 18세 이하 선수다.

아이스하키 여자 실업팀은 수원시청뿐이다. 아이스하키하는 소녀들이 성인이 된 후 스케이트를 벗는 가장 큰 이유다.

야구는 더 심각한데, 실업팀 조차 없다. 국가대표 전원이 사회인 아마추어 선수들이다. 직업 야구 선수로 활동하고 싶은 이들은 ‘여자야구 간판’ 김라경(서울대)처럼 실업팀이 있는 일본으로 향하기도 한다. 아니면, 야구를 시작했다가 중·고등학생 때 국내 여자 실업팀이 존재하는 소프트볼로 전향한다.

활성화 방법은 있다. 우선 ‘가시화’다. 여자 야구 선수들과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 열에 여덟은 “언니, 오빠, 친구가 하고 있어서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지금까지 왔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이스하키 청소년 대표팀 주장 박주연은 “친오빠가 아이스하키를 취미로 하고 있어서 6살 때부터 주말마다 링크장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작했다”고 했다. ‘에이스’ 한유안도 “사촌 언니 한재연이 아이스하키 선수여서 따라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유안의 사촌언니 한재연은 전(前)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였다.

여자 야구 선수들도 비슷한 답변을 했다. 오빠나 남동생이 야구해서 따라다니다가 시작한 경우가 많다. 전(前)한화 투수였던 김병근의 여동생 김라경이 대표적이다. 키움 투수 이명종의 여동생 이예린은 오빠 따라 야구를 시작했다가 미래가 불투명해 소프트볼로 전향해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에 나갔다. 이예린은 “언젠간 야구도 다시 하고 싶다”고 말했다.

둘째는 시·도 단체의 지원이다. ‘가시화’를 위해선 더 많은 노출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여자 야구, 아이스하키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많아야 한다. 아이스하키 유일한 여성 실업팀인 수원시청은 현재 ‘위기’다. 재정 부담으로 손을 놓으려 하고 있고,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 이관된다는 말이 파다하다.

여자 야구는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머리를 맞대 전국체전 종목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5년 ‘생활체육대축전’에 여자야구 종목 도입까지는 확정됐다. 생활체육대축전에서 여자야구 반응이 좋으면, 향후 전국체전 시범종목 내지는 정식종목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 전국체전 정식 종목이 되면 시·도 자치단체 소속 실업팀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우리나라도 ‘직업’ 여자야구 선수로 뛸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두 종목 여자 대표팀은 국위 선양했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야 국민이 관심을 갖고, 기업 및 시·도 단체의 지원도 따라온다는 걸 알기에, 선수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어려운 상대를 꺾고 이기자 너도나도 눈물을 흘리며 아이스링크와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서로를 얼싸안았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분투하고 있다. 소기의 성과도 냈다. 이제 비인기 스포츠를 활성화하는 건 미디어를 비롯한 시·도 단체, 그리고 국민의 몫이다. et1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