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엔 8090, 정통엔 5060
-장남 이선호는 없었다, 장녀 이경후는 역할 확대
[스포츠서울 | 최규리 기자] 해를 넘기면서까지 인사 장고를 거듭하던 CJ그룹의 임원인사가 지난 16일 발표됐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주요 계열사인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의 CEO를 교체하고 CJ CGV, 올리브영의 임원으로 8090세대를 발탁했다. 이 회장은 트렌드를 이끌어야 하는 사업 부문에는 쇄신을 택했고, 반면 경험치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사업 부문에는 안정을 취해 눈길을 끌고 있다.
통상 11∼12월에 있던 CJ그룹의 임원 인사가 해를 넘긴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이는 이 회장이 실적 부진 속에 사업 방향을 세우고 적임자를 찾는데 장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CJ 측은 이번 인사에서 ‘하고잡이’(뭐든 하고 싶어 하고 일을 만들어서 하는 일 욕심이 많은 사람) 젊은 인재들을 리더로 과감하게 발탁했다고 발표했다.
CJ 측은 “이번 인사는 젊은 인재들을 리더로 과감하게 발탁해 나이나 연차와 관계없이 성과만 있다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는 CJ그룹 철학을 반영했다”며 “‘실적 있는 곳에 승진 있다’는 기본 원칙 아래 철저히 성과 중심으로 이뤄진 인사”라고 설명했다.
◇ 90년생이 온다…‘트렌드’ 중시 CGV·올영에는 젊은 피 수혈
이번 인사에서는 1980년대생 6명, 1990년생 1명 등 젊은 임원들도 탄생했다. 나머지 12명은 1970년대생이다.
그중 1990년생으로 올해 34세인 방준식 씨가 눈에 띈다. 그는 뉴욕대에서 미디어·문화·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뒤 오리온 마케팅, 3D애니메이션 회사 글린콘 이사 등을 거쳐 2018년 경력직으로 CJ CGV의 자회사인 CJ 4D플렉스에 입사했으며, 6년 만에 임원의 자리에 올랐다.
방 경영리더는 CJ CGV에서 극장 특별관 사업인 4D플렉스 분야 성장에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방 리더는 지난해 방탄소년단 : 옛 투 컴 인 시네마’, ‘콜드플레이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 라이브 앳 리버 플레이트’ 배급으로 OTT를 선호하던 1020세대 소비자 발길을 영화관으로 이끌어 성과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에 CJ CGV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첫 연간 흑자를 달성했다. CGV는 2023년 연결 기준 매출 1조5458억원, 영업이익은 49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2022년과 비교해 21% 늘었고, 연간 영업이익도 1259억원 증가해 흑자로 전환했다.
CGV가 연간 흑자를 기록한 것은 2019년 이후 약 4년 만이다. 특히 방 리더의 성과가 돋보인 자회사 4D플렉스는 4DX, 스크린X 기술 수출을 통해 글로벌 특별관으로 위상을 공고히 하며, 매출 1247억원, 영업이익 151억원을 기록했다.
CJ그룹은 방 리더뿐 아니라, CJ올리브영에도 30대 젊은 인재들을 경영 리더로 발탁했다. 1987년생인 손모아씨, 1986년생 권가은 씨가 승진 명단에 포함됐다. 손 리더는 스킨케어 트렌드 및 차세대 차별화 전략인 슬로우에이징(slow-aging)으로 높은 성과를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 리더는 국내 사업 진화 및 글로벌 사업 본격화를 위한 중장기 글로벌 전략 수립을 주도해 임원으로 승진했다.
트렌드 구축에 성공한 CJ올리브영은 주 소비층은 MZ세대의 높은 호응을 받으며 단기간 고성장했다. CJ올리브영은 과거 화장품 판매 전략에 고전하지 않고 인기 유튜버와 협업하거나, 팝업스토어를 꾸준히 개최해 트렌드를 이끌며 국내 H&B(헬스앤 뷰티) 시장에서 독주 중이다.
이에 CJ는 트렌드 공급이 절실한 사업 부문에는 젊은 피를 수혈해 또 한 번 쇄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 정통 사업엔 5060으로 안정 지속
반면 CJ는 CJ제일제당 대표에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를 내정했다. 강 대표는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해 3년여만에 CJ제일제당으로 복귀한다. 또 CJ대한통운 대표에는 신영수 CJ대한통운 한국사업부문 대표가 오른다.
CJ는 그룹 주력사업이자 경험치, 노하우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사업 부문인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에는 5060세대를 적임자로 내정해 안정을 택했다.
CJ제일제당 수장을 맡는 강신호 대표는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CJ그룹에서 공채 출신이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은 처음이다.
강 대표는 2020년 말부터 CJ대한통운을 이끌었으며 주요 사업 부문의 구조를 혁신하고 조직문화를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4802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그는 1988년 그룹 공채로 입사해 CJ그룹 인사팀장, CJ프레시웨이 대표이사,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문 대표 등을 거쳤다. CJ대한통운 대표를 맡기 전에는 1년간 CJ제일제당 대표를 지냈다.
CJ대한통운 신임 대표이사에는 신영수 CJ대한통운 한국사업부문 대표가 취임한다. 신 대표는 신규 브랜드 ‘오네(O-NE)’를 론칭하는 등 택배·이커머스 부문에서 미래형 사업모델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CJ대한통운 한국사업부문 역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CJ그룹은 정통 CJ맨을 내정해 실적 부진에 빠진 주요 사업 부문에 믿을 수 있는 구원투수를 내정한 것이다. 이 회장이 장고 끝에 내린 인사의 폭은 크지 않았다. 신중을 거듭한 안정 속에 젊은 피로 쇄신을 꾀하는 데 방점을 둔 인사로 받아들여진다.
◇ CJ 장남 이선호는? 인사 명단에 없어
한편 이 회장의 장녀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과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이번 인사에서 눈길을 끈 것은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이 아닌 이 실장의 누나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이었다.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은 이번 인사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이경후 실장은 CJ ENM 음악콘텐츠사업본부 CCO를 겸직하는 등 역할 확대를 맡게 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CJ올리브영이 과징금 규모 최소화에 성공하면서 이선호 실장이 승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누나인 이경후 실장이 존재가 부각되자 CJ가 남매경영 체제에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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