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묵직한 얼굴, 무표정, 공사장에 있을 법한 연장, 허름한 패션. 배우 하정우가 초기작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오는 2월 5일 개봉하는 영화 ‘브로큰’에선 과거 하정우의 장기를 만끽할 수 있다. 더 노련한 맛이다. 마치 영화 ‘테이큰’처럼 여러 조직을 소탕하는 데, 색이 진한 캐릭터를 입은 하정우의 변주는 영화의 품격을 높였다.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다 동생 석태(박종환 분)가 한 사고를 모두 뒤집어쓰고 감옥 생활을 한 민태는 손을 씻었다. 이른바 노가다 생활을 하면서 연명하던 중, 석태의 부재중 전화를 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동생의 아내 문영(유다인 분)도 연락이 끊겼다. 이상하다 여긴 민태는 창모(정만식 분)를 찾아간다.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야행’이란 소설과 동생의 죽음이 연관됐다는 사실을 포착한다. 민태는 동생의 죽음과 얽힌 진실을 추적한다. 오직 파이프 하나만 들고.
죽은 동생의 사연을 알기 위해 쫓는 이야기다. 단순히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작품인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액션은 거친 맛이 있는 반면, 스릴러 요소는 오미조밀하게 엮여있다. 단서를 알아채고 다음 현장으로 가서, 다시 단서를 알아채면 다음 현장으로 가는 구조다.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에 지루할 틈이 없다.
사실상 하정우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는 영화다. 숙제를 꽤 많이 쥐어줬다. 화자이지만, 과묵한 성격 탓에 대사가 없다. 몇 마디 안 되는 순간에 인물이 가진 힘을 전달해야 한다. 파이프를 들고 하는 액션은 마치 ‘황해’(2012)를 떠올리게 한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스마트하게 풀어내는 영민함도 필요하다. 놀랍게도 하정우는 많은 숙제를 훌륭히 수행한다.
빠른 속도를 위해 영화는 이야기를 최대한 헐겁게 만들었다. 늘어질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쳐내 속도감을 올렸다. 그러다보니 인물 간 정서가 완벽히 이해되지 않는 지점도 있다. 그 빈틈에 설득력을 만들어내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불친절한 작품은 맞지만,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는 대목은 없다.
임성재와 박종환, 차래형 등 연기 잘하는 신흥 배우들이 빈 틈을 잘 메웠다. 새로운 얼굴이 펼치는 신선한 호흡 덕분에 하정우의 연기도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미스터리는 호령 역의 김남길이 맡았다. 많지 않은 분량에도 민태가 가진 에너지의 뒤쳐지지 않아야 하는 인물이다. 김남길의 힘이 절묘한 밸런스를 이뤘다.
파이프를 중심으로 한 액션은 힘이 있다. 다만 느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강하고 투박하긴 하나 다소 느린 템포 때문에 확 빨려들어가진 않는다. 배우들의 노고가 멋있게 전달되지 않았다. 누아르 장르라는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영화는 속편을 꽤 많이 염두에 두고 임했다. 김진황 감독은 속편 초고까지 썼다. 그 덕분에 민태와 석태, 문영, 호령(김남길 분)의 서사가 많이 숨겨져 있다. 워낙 인물들이 매력적이라 속편이 나와도 충분히 기대받을 지점이 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