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오컬트 장르의 주인공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 당당히 맞서 싸우는 인물이 남자일 때가 더 자연스러워서다. 남성성이 짙은 장르였다. 영화 ‘검은 수녀들’은 관행을 틀었다. 여성을 앞세웠다. 여성 서사도 가미했다. 색다른 오컬트가 탄생했다.

‘검은 사제들’을 제작한 영화사 집이 수년에 걸쳐 ‘검은 수녀들’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수많은 작가진이 동원돼 고치고 바꾸고를 반복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해결사’ ‘카운트’를 연출한 권혁재 감독에게 제안이 갔다. 권 감독은 높은 완성도를 갖춘 ‘검은 수녀들’을 흔쾌히 수락했다. 오컬트 장인 장재현 감독의 데뷔작 스핀오프라는 무거운 부담감을 안은 채 출발했으나, 오컬트와 여성 서사의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이끌었다.

권혁재 감독은 “이 시나리오의 준비 기간이 길었던 것도, 송혜교와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단 것도 알고 있었다. 대본 받았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여운이 컸다. 시나리오에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묻어 있었다. 해석할 대목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적 부담감도 있었지만,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검은 수녀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로 신드롬을 일으킨 송혜교의 11년 만의 영화 복귀작이다. 오컬트를 선택했다는 것에서 화제를 모았다. 과묵하지만 밀어붙이는 힘이 확실한 수녀 유니아를 연기했다. 회색빛 처연한 유니아를 중심으로 뭉친 인물의 색이 절묘하게 빛났다. 권 감독은 공을 송혜교에게 돌렸다.

“송혜교는 자연스러움을 강조했어요. 담배 피우는 것도 조금도 어색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흡연을 연구했고요. 진짜로 보여야 한다는 집요함이 있었어요. 송혜교가 유니아를 하면서 풍부해진 것 같아요. 목소리에 신뢰감이 있고, 외모나 표정에서 이미 분위기를 압도했어요. 초자연적인 현상이 송혜교 덕분에 설득됐어요.”

칭찬을 이어갔다. ‘검은 수녀들’엔 유니아의 분량이 상당히 많다. 악령과의 대치, 편견에 대한 저항, 결핍이 있는 여성과 연대, 생명을 위한 진심 등 풀어내야 할 숙제가 적지 않았다.

“긴 대사의 구마를 할 때조차 NG가 없었어요. 에너지를 확 쏟았어요. 그만큼 집중력이 높았어요. 에너지가 워낙 좋았어요. 감탄할 때가 정말 많았어요. 동선과 감정, 눈빛이 모두 정확했어요.”

마지막 유니아의 뒷모습에선 숭고한 희생이 엿보인다. 엔딩에서 한 인간이 과연 선택할 수 있는 결정이냐는 의문이 따른다. 충분히 이해할 법도 하면서 ‘나라면 저 선택을 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유니아가 용기가 있는 거죠. 자신을 돌보기보다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힘이 큰 사람이에요. 담대한 인물이에요. 유니아가 개성이 강하잖아요. 스테레오 타입이 아니죠. 그래서 설득이 되는 것 같아요. 덕분에 감정의 울림도 크고요. 개인적으론 만족합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