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원로 배우’ 이순재 전 국회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유족에 따르면 이순재는 25일 새벽 지병으로 눈을 감았다. 서울고,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뒤 70년 가까이 연극·드라마·영화·예능을 넘나들며 한국 대중문화의 한 축을 일궈온 ‘살아 있는 역사’였다.
특히 1960년대 KBS 1기 탤런트, 1965년 TBC 전속배우로 활동하며 한국 TV 드라마의 태동기와 함께 발걸음을 맞췄다. 이후 ‘나도 인간이 되련다’,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등 그가 출연한 드라마는 140편을 훌쩍 넘는다. 단역까지 합치면 ‘셀 수 없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다작 배우였다.

1991~1992년 방영된 ‘사랑이 뭐길래’에서의 이른바 ‘대발이 아버지’ 캐릭터는 가부장제의 전형이자, 당시 한국 사회의 가족 풍경을 상징하는 얼굴이었다. 시청률 65%를 돌파한 이 작품을 통해 이순재는 일명 ‘국민 아버지’로 불리며 전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사극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사모곡’, ‘인목대비’, ‘상노’, ‘풍운’, ‘독립문’ 등 1970~80년대 사극에 꾸준히 출연한 데 이어 ‘허준’(1999), ‘상도’(2001), ‘이산’(2007)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인물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으며 사극 전성시대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묵직한 목소리와 카리스마, 절제된 감정선은 그 자체로 ‘이순재식 사극 연기’의 교본이었다.
70대에 들어서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기존의 근엄한 이미지를 벗고 ‘야동 순재’로 불리는 코믹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며 10대·20대 젊은 시청자들까지 팬으로 끌어들였다. 연기 인생 내내 진지함과 유머, 카리스마와 허당미를 오가며 ‘자기복제’ 대신 장르와 캐릭터를 확장해 온 셈이다.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빠른 걸음과 굽히지 않는 체력, 끝없는 호기심으로 ‘직진 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80대에도 여행 가방을 직접 들고 유럽 골목을 누비는 모습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몸으로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무대에 대한 그의 태도는 마지막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2008년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무대는 관객과의 약속”이라며 장례를 미룬 채 연극 ‘라이프 인 더 씨어터’ 공연을 올렸고, 2012년 연극 ‘아버지’ 공연 중 부상을 입고도 반창고 하나만 붙인 채 끝까지 무대를 지켰다.

구순을 앞둔 나이에도 그는 연극 ‘장수상회’, ‘앙리 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무대에 서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특히 ‘리어왕’에서는 200분 가까운 공연 동안 방대한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 후배 배우들로부터 “무대 자체가 교과서”라는 찬사를 받았다. 2023년에는 체호프의 ‘갈매기’를 연출하며 대극장 연출에 도전, 연기뿐 아니라 연출자로서도 새로운 이력을 쌓았다.
정치와 교육의 길도 잠시 걸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에 출마해 당선, 국회에서 민자당 부대변인과 한일의원연맹 간사 등을 맡았다. 이후 다시 연기 현장으로 돌아온 그는 최근까지도 대학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최근 몇 년간 건강 이상설은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10월에는 건강 문제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 중도 하차했고, 드라마 ‘개소리’ 촬영도 일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 배우들이 시상식과 간담회에서 그의 건강을 언급하며 쾌유를 기원했지만, 결국 대중의 바람과 달리 안타까운 부고가 전해졌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기성세대가 할 일은 아이들에게 발판을 깔아주는 것”이라며 “자신의 사고와 사상을 물려주려 하기보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길을 갈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스스로는 끝까지 손에서 대본을 놓지 않고,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 더 힘이 난다”며 새로운 역할과 작품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 드라마의 역사이자, 연극·영화·예능을 관통해 온 한 세대의 얼굴이던 배우 이순재는 떠났지만, ‘허준’의 곧은 눈빛과 ‘대발이 아버지’의 호통, ‘야동 순재’의 몸짓으로 오래도록 대중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고인의 빈소와 장례 절차는 유족 뜻에 따라 추후 정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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