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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멋진 변신이다. 개인의 기쁨이라기보다 한국 체육의 구조변화가 엿보이는 영광이기에 더욱 반갑다. 수영 국가대표 출신 김민주(19)가 공군사관학교 수석입학이라는 기적을 이뤄냈다. 김민주는 지난 24일 열린 공군사관학교 75기 입학식에서 수석 입학의 영광을 안으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대동중학교 2학년 때인 지난 2018년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된 그는 장래가 촉망됐던 엘리트 수영선수 출신이다. 그해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혼계영 400m 동메달을 따내며 엘리트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장밋빛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듯했다. 그랬던 그가 고교 2학년이 되면서 돌연 수영 대신 학업에 전념했고, 마침내 기적의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명문대에 견줄 수 있는 공군사관학교에,그것도 수석입학이라는 쾌거를 전하며 체육인의 자존심을 한껏 살렸다. 사관학교 합격에 필요한 학습능력을 갖추기까지는 남모를 고통이 수반됐을 게다. ‘죽음의 냄새’를 맡아야 한다는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혹독한 훈련에 학업을 병행하기란…. 뼈를 깎는 훈련으로 길러진 오기와 독기는 학업에 대한 열정의 불쏘시개로 활활 타올랐을 게 틀림없다.

어머니 장은정 씨는 딸의 기적을 대견스러워했다. “민주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아 수업도 빠짐없이 들었다”면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공사 진학을 꿈꾸며 학업에 전념했다”고 말했다. 김민주가 익숙한 텃밭을 떠나 새로운 세계에 도전장을 던진 게 한국 체육의 변화가 감지되는 지점이다. 국가대표 출신의 엘리트선수가 몸에 익숙한 스포츠 세계를 떠나 정반대의 지적영역에 도전장을 던진 케이스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체육이라는 특수한 세계에 발을 내디딘 대부분의 선수들의 꿈은 별반 차이가 없다.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클래스 선수로 성장해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게 그들이 공통적으로 꿈꾸는 삶이다. 천편일률적인 인생항로,그것처럼 무미건조한 삶은 없을 것 같다. 다양한 삶을 도화지의 여백처럼 남겨둘 수 없는 우리 체육의 단조로움은 아마도 선수들에게 똑같은 꿈을 꾸게 하는 원인일 듯 싶다. 변화의 기미가 싹튼다는 건 한국체육의 새로운 변화이자 질적 도약을 의미한다. 무엇이 그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경천동지할 일이 이뤄진 건 도전의 토양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길을 걷는 세상은 어찌보면 역동성이 없는 ‘죽은 사회’나 다름 없다. ‘죽은 사회’에서는 내부경쟁은 치열하지만 자칫 나타난 결과가 흘린 땀에 비해 초라해질 수도 있다.

혼선과 부작용도 많았지만 엘리트선수들의 새로운 변신이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의미있는 변화다. 아직 이 같은 현상을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엘리트선수들의 인생항로가 다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일이다. 체육의 궁극의 목표가 몸과 정신의 균형잡힌 발전을 꾀하는 것이라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젊은이의 새로운 도전은 체육의 가치는 물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와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부존자원이 취약한 나라에서는 사람을 인적자원(human resources)의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민주의 변신은 인적자원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고무적이다. 그렇다고 김민주의 케이스를 일반화시키는 건 또 다른 강제이며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게다. 적어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결정권,즉 체육을 직업으로 선택하겠다는 결정 역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체육현장을 취재하면서 부러웠던 게 있다. 바로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이 은퇴 후 남들이 선망하는 전문 직업인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다. 1980레이크플레시드동계올림픽에서 전무후무한 전관왕(5관왕·500m 1000m 1500m 5000m 10000m)을 달성했던 미국의 에릭 하이든이 은퇴 후 명문 스탠퍼드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가 된 게 대표적이다. 한국도 엘리트선수들의 미래의 꿈이 다양화되는 조짐이 엿보인다. 이게 바로 한국 체육의 변화이자 발전의 진면목이다. 체육도 변하고 있다. 아니,변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변화를 엘리트선수에게만 요구하지 말고 일반학생들에게 눈을 돌려 그들의 변신을 이끌어내 보자. 체육과 담쌓고 지내는 그들이 엘리트선수처럼 멋지게 운동장을 누빌 때 한국은 비로소 선진국이 됐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날을 손꼽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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