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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말들이 많다. 쏟아지는 비난은 예상했던 터. 그러나 제대로 된 진단은 아닌 것 같다. 202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한 한국 야구대표팀에 관한 얘기다. “우물 안 개구리.” 한국야구에 쏟아진 비난을 요약하면 대체적으로 이렇다. 조별라운드에서 승리가 예상됐던 호주에 패하면서 초래한 1라운드 탈락은 과연 예측하지 못했던 참사였을까? 면밀히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뚜껑을 열어보니 호주의 전력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음이 입증됐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오히려 안일하게 대처한 태도가 잘못됐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만큼 세계야구가 평준화됐고 그 시간동안 한국이 경기력을 가다듬는 여러가지 노력을 게을리 한 결과가 이번 참사를 부른 결정적 원인이라 단언하고 싶다.

일본과의 객관적 실력은 더 이상 따질 필요조차 없다. 그 차가 워낙 컸고 경기력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견줘봐도 어느 하나 나은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구의 가장 중요한 요소컨인 투·타만 해도 그렇다. 먼저 투수력에선 스피드와 컨트롤 모두 현격한 격차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투수의 직구 평균시속이 140km대였고 일본 투수들의 그것은 150km를 기록했다. 이보다 더 큰 격차는 컨트롤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스트라이크 존 네모서리를 정교하게 찌르는 핀포인트 제구력은 고사하고 존 안에 집어넣지도 못하는 컨트롤의 수준 차이는 피칭의 기본기를 가르는 잣대로 충분했다.

타격은 상대 투수력과 밀접한 함수관계에 있겠지만 한국 타자들은 임팩트존을 평면으로 형성해야 하는 기본적인 타법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이정후가 유일하게 임팩트존을 평면으로 만드는 타법을 일관되게 유지해 그나마 월드클래스임을 입증했다. 나머지는 이런 기본기를 떠나 시속 150kn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배트 스피드도 보여주지 못했다. 일본과 투타의 경기력을 가늠하는 건 무의미할 정도로 격차는 컸다.

한국 야구는 WBC 3,4회(2013,2017년)대회에서 연속으로 1라운드에 탈락하고 지난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도 노메달에 그쳤다. 무려 10년에 걸친 오랜 암흑기.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야할 게다. 그 오랜 시간동안 한국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빗발치며 쏟아진 비난과 질책에 정부, 한국야구위원회(KBO), 대한야구협회, 각 구단, 그리고 선수들은 과연 각 층위에서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새롭게 시도했는지 궁금하다. 질책과 비난은 한 순간일 뿐, 그 엄혹한 시간이 후딱 지나간 뒤 변화와 도전을 위한 행동은 별로 취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놓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게 바로 이번 WBC 참패의 원인이라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또 하나 빼놓아서는 안될 게 있다. 일본 등 월드클래스와의 객관적인 전력 차를 떠나 반드시 장착해야 하는 하나가 빠졌다. 바로 야구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마음가짐이다. 필자는 이것을 정성(精誠)과 혼(魂)이라고 부르고 싶다. 현대 스포츠에 정성과 혼이란 말은 잘 어울리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많겠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참사가 객관적인 기량의 차를 떠나 한국야구의 내면에서 기인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성과 혼은 실력의 차를 극복하는 한국 야구의 최대 장점이자 야구를 대하는 겸손한 태도였다. 강한 정신력과 우격다짐식 투혼을 말하자는 게 아니다. 공 하나 하나에 집중하고 혼을 불어넣은 진지함과 간절함을 말한다. 이게 빠져 있다면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기본이 빠진 상태에서 실력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가 외형적 성장에 취해 겉멋만 잔뜩 들었다면? 지금 한국야구에는 야구를 대하는 진실된 마음,정성과 혼이 절실하다.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