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람틴(홍콩)=황혜정기자] 꼬박 19년이 걸렸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동안 한국 여자야구도 조금씩 성장했다.
대한민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이 26일(한국시간) ‘세계최강’ 일본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에 0-10 콜드패했다.
예견된 수순이었다. 별다른 지원도, 관심도 없어 실업·프로팀이 전무한 국내 여자야구 현실과 달리, 일본에선 남자야구는 ‘사무라이 재팬’, 여자야구는 ‘마돈나 재팬’이란 애칭이 있을 정도로 자국 내 인기가 많다.
야구를 하려는 여학생을 위한 엘리트 코스도 전세계에서 가장 잘 마련돼 있다. 일본 여학생들은 초등학생부터 야구 기본기를 잘 다져와 고등학교 졸업 후 실업팀으로 향한다. 국가대표로 활동하다 은퇴하게 되면 일선 학교로 가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간다. 엘리트 여자야구 선수 양성이라는 선순환이 반복된다.
대한민국 여자야구 대표팀 코치진들도 일본 대표팀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KIA타이거즈와 LG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정용운 투수 코치는 “던지는 것부터 프로 선수같다. 받는 것도 여유가 넘친다. 일본은 완전 프로”라며 놀라워했다.
기본기부터 구력, 체계, 지원, 관심, 선수층 등 모든 것이 차이가 나니 이기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이날 경기로 실력 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지난 2004년 대한민국은 일본에 0-53 완패를 당했다. 단 1점도 뽑지 못하고 5회 콜드게임패를 당했다. 당시는 대한민국에 여자야구 국가대표팀도 없어, ‘국내 여자야구 선수 1호’ 안향미가 이끄는 사회인 여자야구 동호회인 ‘비밀리에’가 대표팀 자격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창단된 지 4달도 안 된 사회인 동호회가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온 일본 대표팀에 대량 실점을 한 것은 당연했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오늘, 대표팀은 한 층 성장한 모습으로 일본을 상대했다. 그 기간동안 변한 건 크게 없었다. 여전히 무관심 속에 조용히 대회를 준비했고, 메인스폰서도 구하지 못해 쩔쩔매다가 ‘오스템임플란트’가 손을 내밀어 3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마저도 대표팀 투수 최송희가 오스템 직원이란 이유로 후원해준 것이다.
이날 비록 안타 한 개만 뽑아내며 0-10 콜드패를 당했지만, 대표팀의 경기력은 희망적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번번이 놓치던 내야·외야 플라이를 한번도 놓치지 않았다.
완벽한 ‘더블 플레이’도 한 차례 나왔다. 2루수(이지아)-유격수(박주아)-1루수(장윤서)로 이어지는 더블 플레이로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20대 초반 대학생인 투수 이지숙의 1이닝 무실점 깔끔투도 향후 남은 대회를 기대감에 차게 했다.
일본전 선발 등판한 투수 곽민정은 1.2이닝 5실점 조기강판했지만, 대한민국 여자야구의 미래다. 고등학교 1학년으로 대표팀 막내인 곽민정은 투수진 8명 중 가장 공이 빠른 투수다. 그는 이번 일본전을 계기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미래가 또 한 번 성장했다.
대표팀 양상문 감독은 “남녀 모두 기본기를 강조하는 일본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라며 “일본 여자 선수들이 기본기가 너무 좋더라. 우리나라도 어렸을 때부터 기본기를 잘 다져놓는 시스템이 정착됐으면 한다”라고 바랐다.
같은 ‘콜드게임 패’라는 수모였지만 19년 사이에 질적으로 경기 내용이 달라졌다. 대한민국 여자야구가 한 번 더 성장했다. 여전한 무관심과 무지원 속에서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et1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