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국민차에 가까운 그랜저, 소나타, 아반떼는 페이스오프가 잦다. 풀체인지 수준의 디자인 변경도 빈번하다. 이게 같은 이름의 차인가 싶을 정도다. 물론 디자인의 압축적인 발전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입이 나올만하다. 내가 산 차가 얼마되지 않아 구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차의 고급차 라인 제네시스 브랜드는 조금 다르다. 2015년 첫 출시이후 꾸준히 외양은 변신중이지만, 기본 디자인을 유지하며 진화중이다. 그만큼 초기단계의 디자인 완성도가 높았다는게 ‘차알못’ 기자의 생각이다.
제네시스는 에쿠스를 밀어내며 현대차의 고급차 포지셔닝을 완벽하게 차지했는데, 채 10년이 안 된 단기간에 이룬 눈부신 성장이다. 하지만 동급의 외제 고급차 모델에 비해 짧은 역사만큼 갈 길은 아직 멀다.
더 많은 고객에게 인정받고 신뢰받을 시간이 필요한데, 이를 앞당길 대표주자 중 하나가 GV80이다. 제네시스 SUV 라인업의 플래그십이다.
이번에 시승한 차량은 지난해 10월 출시한 최신 GV80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외양은 전체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 헤드램프부터 범퍼 디퓨저까지 시그니처는 ‘두 줄’이라는 임팩트를 구현하며 본연의 헤리티지를 유지한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더 고급화를 진행했다. 크레스트 그릴을 이중 메시로 다듬었고, 기요세 패턴이 들어간 엠블럼도 반짝인다.
후면부 변화는 조금더 인상적이다. 범퍼 하단의 머플러를 숨기고 크레스트 그릴로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후면이 하향안정화 되며 전체적으로 올라선 느낌이다. 이전 모델만 해도 테일램프의 크기와 위치 때문인지, 차량 엉덩이가 약간 처진 느낌이었는데 이번에 힙업하며 이를 해소됐다.
운전석에 앉으니 27.2인치 일체형 디스플레이가 첫 시선을 빼앗는다. 스크린이 조수석까지 길게 쭉 뻗어있다. 마치 고급 한정식집에서 한 상 차려 나온 듯하다. 여기에 각종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다채롭다. 배려가 깊다는 느낌이다. 다만 한정식집의 반찬 가짓수가 많아, 어디서부터 젓가락질해야 할지살짝 머뭇하게 된다.
내비게이션을 예로 들면, 운전석 앞 계기판과 윈드실드의 AR내비에기션, 그리고 조수석 쪽까지 3개를 동시 운용할 수 있다. 개인 성향에 맞게 조절할 수 있지만, 어쨌든 차량의 지원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매우 친절하다. 적응만 마치면 무척 편리할게 틀림없다.
스피커는 뱅앤올룹슨이다. 무려 18개 스피커가 내부 곳곳에 장착되어 있다. 귀뿐만 아니라 몸전체에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한 사운드를 선사한다. 핸들은 말 많던 럭비공 모양에서 날렵한 스티어링 휠로 깔끔하게 교체됐다.
금요일 오후, 붐비는 서울 시내에서 20km 정도를 운행했다. 많이 막혀서일까. 표기된 도심연비에 비해 20% 정도 연비가 덜 나왔다. 다음으로 차가 별로 없는 야간에 고속도로를 달렸다. 가속과 브레이크 페달을 아끼지 않고 100km 거리를 달렸다. 다만 속도는 시속 100km에서 120km 사이를 유지했다. 연비는 9km가 나왔다.
이번엔 기름값을 아낀다는 마음을 먹고 관성 주행을 해봤다. 100km를 달린 뒤, 확인하니 연비 12km가 찍혔다. 이 차량의 공식연비는 복합 7.9~9.3km/ℓ 도심 6.8~8.2 고속 9.7~11km/ℓ다.
차량의 승차감은 편안하다. 딱딱한 유럽 소파가 아닌 부드러운 미국 소파에 가깝다. 단단한 유럽차에 비해 승차감은 확실히 소프트하다. 하지만 밸런스가 좋아 오래 주행해도 피로감이 적다.
그리고 차로이탈방지 버튼을 누르고 운행했는데, 핸들에 손만 대고 있어도 차량이 도로를 이탈하지 않았다. 이 기능의 경우 도심에선 크게 필요성을 못 느꼈는데, 핸들을 크게 돌릴 일이 거의 없는 고속도로에선 유용하게 사용했다.
차량의 안전장치는 정말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발전한다는 걸 느낀다. 후진할 때 미처 확인하지 못한 장애물이 나타나자 차량이 스스로 멈췄다. 시승을 마치고 차에서 내리는데, 승차감 뿐 아니라 하차감도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