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프로농구단인 DB프로미가 원주를 연고로 두고 있어 스포츠마케팅 차원에서도 강원도에서 대회를 유치하는 게 맞다는 게 경영진 생각이다.”
지난해였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라비에벨 컨트리클럽에서 만난 DB손해보험 관계자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개막전을 강원도에서 개최하는 이유로 ‘일관성있는 스포츠마케팅’을 꼽았다.
2023~2024시즌 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팀인 원주 DB도 DB손해보험의 자회사. 창업주인 김준기 회장이 강원도 출신이기도 해 강원도에 특히 애정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포천의 대유 몽베르CC에서 치르던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을 코로나19 앤데믹 이후 강원도로 무대를 옮긴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KPGA투어 개막전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많은 팬에게 8개월간 대장정의 시작을 알리는 무대여서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DB손해보험은 접근성이 빼어난 수도권 골프장을 마다하고 강원도 개최를 고수했다.
‘KPGA 개막전은 강원도에서 시작한다’는 이미지도 각인하고, 프로농구단 원주 DB와 자연스레 연계해 강원도민의 자부심 고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스포츠 불모지’ 오명을 쓰고 있는 강원도의 이미지 쇄신도 꾀할 수 있어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올해 개막전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윤상필(26)이 77번째 도전 만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첫날 코스레코드인 10언더파를 몰아치는 괴력을 뽐냈고, 최종일에도 백전노장 박상현(41·동아제약)을 제치고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입대를 고려했다”는 윤상필의 우승소감은 이른바 ‘이대남’의 현실과 고민, 꿈과 성취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남자 골프, 나아가 한국 골프를 대표하는 KPGA투어 개막전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은 새로운 ‘개막전의 사나이’ 탄생을 알렸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나흘간 라비에벨CC를 찾은 갤러리는 단 2701명에 불과했다. 아무리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인기가 기형적으로 크다고는 해도, KPGA투어도 견고한 팬을 보유한 어엿한 프로 투어다. 심지어 ‘글로벌 투어로 격상하겠다’는 게 초목표다.
대회 관련 빌드업을 전혀 안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지역밀착 마케팅이든 관광상품 연계 프로그램이든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많은 관중을 유치하는 건 프로스포츠의 기본 중 기본이다.
팬 사인회로 수요가 부족하면, 원포인트 레슨이라도 해서 갤러리에게 KPGA투어 선수들의 화려한 샷 대결을 보여주는 게 맞다. ‘글로벌 투어’나 ‘프로 스포츠’로 인정받으려면, 무엇보다 팬이 있어야 한다. 많은 팬을 불러모으는 건 거액을 들여 대회를 개최하는 후원사와 매 샷 최선을 다하는 선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다.
올해는 특히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를 자처하는 인물이 KPGA 수장이 된 탓에 차원이 다른 마케팅 포인트에 눈길이 쏠린 게 사실이다. 그러나 KPGA 김원섭 회장은 “역대 최초로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치르는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의 초청을 받았다. KPGA투어가 글로벌 투어로 격상할 전환점이라고 생각해 세계 각 투어 커미셔너들과 교류의 장을 만들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태평양을 건넜다.
KPGA투어 위상이 격상하는 일에 회장이 빠지는 것도 모양새가 안좋은 일이다. 그렇더라도 KPGA투어 개막전을 소홀히하면 안된다.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여서다.
프로암대회 잘 치르고, 사고없이 대회를 끝내는 게 능사는 아니다. 생애 첫 우승을 개막전에서 따낸 선수가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축하받을 영광 또한 투어를 총괄하는 커미셔너의 소임이다.
사람은 사람을 부르고, 사람이 모이는 곳은 돈이 돈다. 크게보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스포츠를 통한 진정한 사회공헌의 길을 제시하는 게 프로스포츠의 역할이다.
김 회장은 취임 후 사무국 주요 보직자를 재편했다. 이들에게도 개막전 지휘는 처음일텐데, 수장이 빠졌으니 제대로 돌아갈리 없다.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가 첫 단추부터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찾았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