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스무살도 안 된 어린 친구가 악령에 씌었다. 두 눈엔 분노와 광기가 가득하다. 인간의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주를 퍼붓는다. 전기가 나가고, 불이 꺼지는 초자연적인 현상도 일어난다. 보통 인간이라면 견딜 수 없는 공포의 현장. 그 앞에서 흔들림이 없는 사람은 유니아(송혜교 분) 수녀뿐이다. 담담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악령과 대치한다. 손에 땀이 쥐어지고, 심장이 빨라진다.

24일 개봉을 앞둔 ‘검은 수녀들’은 송혜교의 얼굴에 기댄다. 그 기대를 훌륭히 메웠다. 덕분에 ‘역시 송혜교’란 말이 절로 나온다. 작품 내내 아우라가 다르다. 오컬트 장르 특유의 영화적 상상이 가미된 장면을 송혜교의 무표정이 설득하고 만다. 변화 없는 얼굴로 악령과 맞서는 모습은 흥미롭다.

‘검은 수녀들’은 악령에 씐 희준(문우진 분)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바친 수녀와 의사의 이야기다. 2015년 개봉한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잇는 스핀오프다. 로마에서 수행 중인 김신부(김윤석 분) 대신 구마 의식에 상당한 재능이 있는 유니아가 구마 의식을 단행하는 점이 포인트다.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수많은 편견과 제약을 뚫고 사람을 살리는 데만 집중한 두 여인의 연대를 담는다.

오컬트 장르에 여성의 연대를 앞세운 버디물을 버무렸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현상 못지않게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다. 그 가운데 이제껏 자주 보지 못한 송혜교의 얼굴이 많다. 데뷔 29년의 내공이 ‘검은 수녀들’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담배 연기를 깊게 머금은 옆모습은 처연하다. 생사가 걸린 문제에 편견을 앞세워 차일피일 미루는 신부들의 행태에 반기를 들 땐 강인하다. 영적인 힘이 강한 의사 마카엘라(전여빈 분)를 설득할 땐 냉정하며, 악령과 맞선 장면에선 처절하다. 지쳐가는 희준을 대할 땐 따듯하다. 대승적인 결정을 하고 쓸쓸히 걸어가는 뒷모습은 숭고하다.

‘더 글로리’에서 자신이 보지 못한 얼굴을 그려내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고 말한 송혜교에게 ‘검은 수녀들’은 또 하나의 의미 있는 필모그래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인뿐 아니라 주위 배우들도 빛나게 하는 데 일조했다. 불안함을 이겨낸 마카엘라 역의 전여빈, 냉소적인 무당을 맡은 김국희, 원칙에 집착하는 바오로 역의 이진욱 등 인물들이 모두 빛나는 건 회색빛의 유니아 덕분이다.

“너무 뻔한 연기 때문에 나조차도 지루했다”는 예능에서 말이 무색해지는 연기다. 연이은 변화 속에서 훌륭한 성장이 엿보인다. 장르물에 담긴 송헤교가 기다려진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