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돌다 숨졌다”… 이마 찢어진 환자의 비극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한 남성이 이마가 찢어진 채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응급실 세 곳을 돌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또 발생한 응급실 뺑뺑이 죽음을 두고 한국응급의료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다시 커지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은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와 현실은 달랐다.
■“성형외과 치료 필요하다”며 이송… 응급조치는?
사건은 지난해 4월 대구에서 발생했다. 이마가 찢어진 A씨는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의료진은 “성형외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A씨를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
두 번째로 도착한 병원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일 진료가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고, A씨는 또 다른 상급종합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원에서도 성형외과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사이 A씨의 몸 상태가 악화됐다. 구급차로 다시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던 A씨는 혈압과 맥박이 급격히 떨어지며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곧바로 심폐소생술이 실시됐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A씨의 뇌진탕, 뇌출혈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응급실은 있었지만, 응급조치는 없다?
A씨가 거쳐 간 병원들은 모두 ‘응급실’을 갖춘 상급종합병원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즉각적인 응급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병원들은 A씨를 이송하는 데만 급급했고, 정작 그의 상태가 악화하는 동안 제대로 된 조치는 없었던 것.
유족들이 “상처를 봉합하는 것은 나중 문제였다. 최소한의 응급처치는 했어야 하지 않느냐”며 울분을 토하는 이유다.
경찰 수사 결과, A씨가 방문한 병원 3곳에서 모두 적절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경찰은 당시 근무했던 의사 등 의료진 6명을 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응급실의 존재이유는?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은 생명이 위태로운 응급환자에게 신속한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A씨의 경우 치료보다는 ‘책임 회피’ 등 이송에 더 급급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물론 의료진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까지 적용되진 않았다. A씨가 여러 병원을 거치는 동안 사망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고, 병원 간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기 어렵다는 이유다. 하지만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해서 도의적 책임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은 한국 의료 시스템의 뿌리 깊은 문제를 다시금 드러냈다. 응급실은 있지만, 정작 응급환자는 받아주지 않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 특정 진료과가 없다는 이유로 환자를 내보내는 현실, 그리고 응급실이 사실상 ‘과거력과 상관없이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선별하는 곳’이 되어버린 문제까지 보여준다.
A씨의 죽음은 단순 의료사고가 아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다. 오늘도 병원문 앞에서 응급 및 중증환자와 가족들은 “제발 받아만 주세요”라고 애원하고 있다.
최근엔 한국응급의료 시스템과 더불어 의정갈등, 지역의료 부족까지 시험대에 올라 있다.
kenn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