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1990년대 교복 입은 청춘들의 분노와 외침은 음악과 영화로 터져 나왔다.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는 학교가 ‘죽음의 교실’이 됐다고 외쳤다. H.O.T의 ‘전사의 후예’는 폭력에 무너진 청소년의 삶을 세상에 고발했다. 제도권 교육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반항은 그렇게 비트 위에 실렸다.

이런 감정은 ‘화산고’ 같은 영화로 이어졌다. 학교가 배경이지만 교사가 무술을 쓰고, 학생들은 에너지를 발사하며 싸우는 만화같은 내용이다. 공부, 폭력, 압박 속에서 길을 잃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판타지로 포장한 일종의 ‘탈출구’였던 셈이다.

당시 ‘청춘 콘텐츠’는 단지 감정 분출이 아니다. 사회와 제도, 억압적인 교육을 향한 항변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작은 피난처였다. 이 피난처가 21세기들어 ‘학원 액션물’이라는 이름으로 진화하고 있다.

TV 시대의 청소년 드라마는 한계가 분명했다.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엔 규제가 많았다. 하지만 OTT가 열어준 문은 다르다. 방송법에서 벗어난 만큼 수위도, 깊이도 훨씬 과감하다. 덕분에 직설적인 표현과 장르 실험도 가능하게 했다.

자연스럽게 팬층이 넓어졌다. 청소년뿐 아니라, 이른바 ‘무협지 세대’인 성인 시청자들까지 유입돼 학원 액션물은 ‘10대를 위한 드라마’가 아닌, 세대를 아우르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티빙 드라마 ‘스터디 그룹’은 그 진화의 최전선에 있는 작품이다. 싸움 잘하는 모범생 윤가민이라는 캐릭터를 앞세운 이 작품은 블랙코미디와 먼치킨 판타지를 결합해 호응받았다. 비현실을 통해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입시에 집착한 나머지 스스로를 괴물로 만든 주인공, 그가 벌이는 황당하고 통쾌한 싸움은 웃음을 주면서도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은근히 비튼다.

넷플릭스의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를 끌어와 학교라는 공간을 완전히 변형시켰고, 티빙 ‘돼지의 왕’은 연쇄살인 사건 현장에 남겨진 20년 전 친구의 메시지를 시작으로 학교폭력의 구조를 파헤쳤다.

‘약한 영웅 Class 1’은 공부밖에 모르던 모범생이 날렵하고 냉정한 싸움꾼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웨이브 ‘청담국제고등학교’는 재벌 2세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설정으로 입시 전쟁을 비꼬았다.

작품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된 정서가 있다. 억울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외면하지 않는다. 누군가 대신 맞서 싸운다. 이들의 주먹에는 이유가 있다. 절대로 먼저 폭력을 휘두르지 않지만, 부당한 폭력 앞에서는 누구보다 단호하게 대응한다. 폭력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분명한 선과 악, 그리고 약자를 지키겠다는 윤리적 동기가 깔려 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학원 액션물은 단순한 폭력 묘사를 넘어, 시대마다 억눌린 청소년들의 감정과 목소리를 대변해온 장르다. 과거 TV에서는 제약된 수위 안에서 다루던 교육 문제나 학교폭력이, OTT 플랫폼을 만나며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그려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학원 액션물은 장르적 쾌감과 더불어 ‘힘없는 아이를 괴롭히지 마라’는 기본적인 도덕성까지 품고 있어 대중에게 더욱 폭넓은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