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민규동 감독은 영화 ‘파과’ 앞에 커다란 숙제 두 개를 풀어야만 했다. 하나는 여성 킬러, 또 하나는 나이 든 여성 킬러였다. 과제 위의 난제였다. 그러나, 마침내 해냈다. 마지막 신을 촬영하며 주연 이혜영과 얼싸안고 뜨겁게 울었다. ‘완성’이란 결승선을 통과한 자에게 허락된 눈물이었다.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파과’를 연출한 민 감독은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실제 소설을 읽었을 때 영상화하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해저에서 보물을 건져 올리는 기분도 들었다”며 “대다수가 사실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한국 영화가 어려워지는 시기였고, 여성 주인공이 액션 영화로 펼쳐졌을 때 믿을까 하는 게 있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남자 배우도 타격감이 약하다는 평이 있었죠. 하물며 이혜영 배우와 영화를 끝까지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킬러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잖아요. 관객에겐 여성 킬러를 보지 못했던 갈망이 있었을 거라고 봤죠.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게 새로운 영화 만드는 동력이 됐다고 봐요.”

결국 믿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베를린영화제 출품이 분기점이 됐다. 지난해 10월 말에 출품할 때 비해 올해 2월 버전은 국내 상영용으로 압축 과정을 거쳤다. 여기에 19세 관람 불가 판정을 받으며 더 압축됐다. 킬러 조각(이혜영 분)의 은퇴와 노화에 관한 드라마를 대폭 걷어내고, 자신을 쫓는 투우(김성철 분)와 대립과 갈등을 살리는 방향으로 편집을 바꿨다.
민 감독은 “영화는 자본이든 관객의 집단 무의식이든 선택을 받게 된다”며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조각과 투우의 감정이 교차하는 액션 누아르로 돌아왔다. 이게 상업 영화로서의 정체성과 장르에 충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킬러인데 여성과 노인이다. 치명적 단점은 서사로 상쇄시켰다. 민 감독은 “조각은 인간 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달콤함조차 없다. 16세에 첫 살인을 하고, 정상적인 인간의 삶이 멈췄기에 차가운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다”며 “영화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단순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이 인물의 복잡한 딜레마와 모순을 삶을 예찬하는 방식으로 풀어보려 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걸 해결한 건 조각을 연기한 이혜영이었다.
“이혜영을 처음 만났을 때 이 인물이 걸어가기만 해도 영화의 무드와 스타일이 나오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간신’(2015) 이외는 액션을 안 해봤는데, 배우도 마찬가지였죠. 이렇게 불완전한 물리적 결합이었지만, 진행하면서 화학적 반응이 일어났죠. 첫 리딩 때 일어날 때도 ‘에구구’하고 소리 내시던 분이 그 인물이 되는 순간에는 텍스트를 너머에 있었죠. 하얀 옷을 입은 모습은 성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조각과 투우의 마지막 결투는 배우, 스태프 모두 피를 말렸다. 하루에 고작 3~5m를 전진하는 수준으로 진행됐다. 민 감독은 “수도도 화장실도 없는 폐건물 속에서 극단의 상황을 찍다 보니 저조차도 그 싸움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마지막 장면을 해낸 순간 달려가서 이혜영을 껴안았다.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오열이 터져 나왔다”고 회상했다.
의심과 확신 사이 숱한 갈등 속 나온 울음이었다. “마지막 순간, 우린 죽지 않고 살아났구나” 그는 그 눈물을 그렇게 해석했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