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영화를 볼 때 관객은 캐릭터를 봐야 할까. 이를 연기한 배우를 봐야 할까. 배우의 존재감이 너무 커도 안 되고, 캐릭터가 너무 강렬해도 안 된다. 전자는 인물이 아닌 배우를 보게 되고 후자는 배우의 꼬리표가 된다. 중용(中庸)을 찾기는 늘 어렵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속 조연들이 그러하다.
영화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25년간 제지 회사에 재직했던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재취업을 위해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미국 소설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한다.
‘박찬욱’이라는 이름값에 더해 배우진도 화려하다. 배우 이병헌과 손예진을 필두로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모두 타 작품에서 주연으로 나서는 출연진이다. 그럼에도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서 기꺼이 조연을 선택했다.

이성민은 만수 못지않게 재취업이 절실한 제지업계 베테랑 범모 역을 연기했다. 아내 아라(염혜란 분)의 재촉에도 제지업이 아니면 죽음뿐이라는 강한 의지를 지닌 인물이다. 제지에 살고, 제지에 죽지만 이는 곧 아내와 갈등의 시발점이 된다. 염혜란은 범모의 아내이자 무명 배우 아라로 호흡을 맞췄다. 누구보다 범모를 사랑하지만 실직 후 의지를 잃은 그의 태도에 실망한다.

차승원은 또 다른 베테랑 시조 역을 맡았다. 제지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던 실력자에서 해고된 후 구두 가게 매니저로 생계를 이어 나가는 인물이다. 손님으로 위장한 만수가 슬쩍 제지업에 대한 이야기를 흘리자 몸에 밴 제지 지식을 쏟아낸다. 만수와 범모 못지않게 제지업을 사랑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박희순이 연기한 선출 캐릭터는 제지업계 1인자 ‘문제지’의 반장직이다. 동시에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길 줄 아는 SNS 스타다. 만수에게 있어서 선출은 자신의 ‘추구미’다. 그렇기에 가장 큰 경쟁 대상이다.
이름만 들어도 ‘믿고 보는’ 배우들이다. 한 명 한 명 각 작품의 주연을 맡아도 손색이 없다. 실제로 모두 주연의 경험이 있다. 그런 배우들이 ‘어쩔수가없다’에선 만수의 전쟁에 등장하는 조연이 된다. 모두가 생명력이 충만한 캐릭터다. 연기 구멍도 없다. 만수의 ‘어쩔수없는’ 선택에 등장하는 이들의 모습은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특히 만수의 첫 살인이 일어나는 범모의 음악실 속 이병헌, 이성민, 염혜란의 삼자대면 장면은 감탄을 부른다. 강렬한 음악과 어우러지는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상황 속 울부짖음은 각자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공감을 부른다.
차승원 역시 개인의 자존심을 뒤로한 채 가족을 위해 생계전선에 뛰어든 시조의 처지를 현실감있게 그려낸다. 구두가게 매니저로 일하며 손님에게 굽신거리며 초과근무도 마다하지 않는 ‘짠내’나는 가장을 표현한다. 박희순 표 선출도 화려한 외면과 달리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며 아내에게 외면받는 현 시대의 가장의 얼굴이다.

문제는 몰입감이다. 배우 개별의 능력치가 출중한 탓에 오히려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일각의 시선도 존재한다. 작품을 볼 땐 오롯이 그 인물로 보여야 하지만 배우 본체의 존재감이 넘쳐나면서 벌어지는 부조화다.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어쩔수가없다’는 이병헌의 원맨쇼다. 관객은 만수에게 몰입해 그의 선택을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조연들의 너무 큰 존재감 탓에 자꾸만 멈칫하게 된다. “정말 어쩔수가 없었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는 ‘어쩔수가없다’만의 걸림돌이 아니다. 앞서 영화 ‘비상선언’을 비롯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연을 앞세워 힘있게 작품을 끌고나가야 하는데 조연 배우들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주의가 분산된다.
이와 관련해 한 영화계 관계자는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스타 캐스팅’은 흥행 전략 중 하나다. 하지만 과한 이름값은 결국 작품의 밸런스가 깨질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양날의 검이다. 흥행의 초석이 되거나 결국 배우의 이름만 남는 경우”라는 반응을 보였다. sjay09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