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화 캐스트와 함께 2년 만에 컴백

영혼의 음악 ‘로큰롤’로 전하는 사랑·우정

단 1초도 놓칠 수 없는 탄탄한 스토리·주옥같은 넘버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세상이 미쳐서 ‘미친 자(者)’로 사는 게 정상이라는 말이 있다. 약 75년 전 인류애를 단절시킨 법을 깨고, 음악으로써 세상을 연결한 아름답게 미친 이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정신 나간 ‘휴이’, 살짝 골 때리던 놈(뮤지컬 ‘멤피스’ 넘버 ‘Crazy Little Huey’ 가사)’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알고 보니 누구보다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멋쟁이’다.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니, 셔터를 촤라락 내리고 이 공간에 갇혀 작품 속으로 빠져들어 보자. “에브리바디, 하카두(Everybody, Hakadoo)!”

뮤지컬 ‘멤피스’는 1950년대 미국 남부 도시 멤피스를 배경으로 흑인 음악을 백인 사회에 알린 전설적인 DJ 듀이 필립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상황, 백인과 흑인을 ‘선(善)’과 ‘악(惡)’으로 분리했다. 당시 백인과 흑인은 겸상, 아니 대화조차 불가능했던 시대였다. 이들은 단순 접촉만으로도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사회적 분위기는 심각하게 살벌했다. 그런데도 겁 없는 백인 ‘휴이’는 흑인 구역인 빌스트리트의 한 언더그라운드 클럽 가수인 ‘펠리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린다. 그의 노래는 세상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인류를 하나로 묶는다.

사고뭉치 ‘휴이’는 신이 허락하지 않은 경계를 만든 사람들의 편견을 깬다. 그것도 당시 금지곡과 같은 흑인 음악 ‘블루스(Blues)’와 ‘로큰롤(Rock&Roll)’로써 말이다.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위험한 시도였지만, 그는 “그냥 하는 거지”라며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돌연변이 같지만, ‘휴이’가 전한 음악은 마침내 인종 간의 차별과 대립을 허문다.

‘휴이’는 자신의 방송을 듣는 이들을 ‘돌멩이’라고 부른다. 이후엔 좀 더 머리가 커서 ‘돌덩이’가 된다. 왜 ‘돌’로 통했을까? 그가 ‘돌대가리’라고 불려서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에게 그토록 들려주고 싶었던 로큰롤의 ‘Rock(바위)’에서 따왔다. 딱 그다운 발상이다. 하지만 해당 장르는 에너지와 추진력(Rock)을, 그루브와 감각적인 흐름(Roll)을 상징한다. 인종을 넘어선 진정한 사랑과 우정도 대변한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인사 대신 “하카두”라고 말한다. ‘휴이’가 별 뜻 없이 툭 뱉은 한마디다.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 이상하게 입에 착 달라붙는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레드 썬’ 상태가 된다. 때론 소원을 비는 주문과도 같아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멤피스’는 힐링극이다. 웃겨서 웃고, 어이없어서 웃고, 신나서 웃는다. 그러다가 울기도 한다. 애드리브 같은 대사 한마디가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배경은 미국인데, 왠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나누며 위로받는 기분이다. 어쩌면 누구나 바라는 삶은 화려한 조명, 돈과 명예가 아닌 가족과 친구에게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한 안식을 원해서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위로와 공감을 통해 희열과 희망을 전한다.

한편 2년 만에 재연으로 돌아온 ‘멤피스’는 초연에 이어 초호화 캐스팅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휴이’ 역 박강현·고은성·정택운(레오)·이창섭, ‘펠리샤’ 역 정선아·유리아·손승연, ‘델레이’ 역 최민철·심재현, ‘글래디스’ 역 최정원·하은섬 등이 출연한다. 또한 왜 앙상블이 ‘갓상블’인지 증명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니, 한눈팔 틈이 없다.

◇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 배우들의 맛깔스러운 노래

무대가 시작되는 순간, 마음의 셔터를 내리고 공연장에 갇혀 오로지 작품 속으로 스며든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스토리가 물 흐르는 듯 편안하게 진행된다. 특히 어느 한 곡도 놓칠 수 없는 주옥같은 넘버들이 세계관을 연결하는 주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멤피스’의 넘버들은 음악에 영혼을 맡긴 감성을 자극한다. 물론 대표 넘버들이 있지만, 곡의 흐름에 따라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추천한다. 극의 시작을 알리는 넘버 ‘Underground’부터 마지막 ‘Steal Your Rock ‘n’ Roll’까지 어느 한 곡을 빼놓을 수 없는 주옥같은 넘버들로 이뤄져 있다.

작품의 배경인 멤피스는 소울, 블루스, 재즈, 가스펠, 부기우기, 로큰롤, 컨트리 음악 등 다양한 음악 장르 선구자들의 고향이다. 특히 ‘휴이’가 목숨 걸고 세상에 알린 로큰롤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작품의 대다수 넘버는 로큰롤이다. 로큰롤은 흑인의 소울을 담은 블루스를 빠른 템포로 부른 장르다. 시간이 흘러 흑인과 백인의 음악이 섞인 특유의 스타일로 탄생했다는 몇몇 학회의 주장도 있다. 하지만 로큰롤이 흑인 음악에서 시작한 건 부정할 수 없다.

작품을 본 관객들은 공연장의 지붕이 날아갔다고 표현한다. 이처럼 매회 흥행인 이유 중 하나는 각 배역에 완전히 스며든 배우들의 에너지 덕분이다. 진성과 가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휴이’와 휘트니 휴스턴을 연상케 하는 ‘펠리샤’의 목소리에 매료된다. 두 주연 배우의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소울 충만한 조연 배우들과 앙상블이 보여주는 힘도 빼놓을 수 없다.

앙상블과 함께하는 ‘Underground’ ‘Radio’ ‘Crazy Little Huey’ ‘Stand Up’ ‘Steal Your Rock ‘n’ Roll’ 등은 파워풀한 목소리와 안무로 심장을 폭격한다. ‘펠리샤’가 부르는 ‘Colored Woman’ ‘Someday’ ‘Love Will Stand When all else falls’ 등은 달콤해서 귀가 녹는다. ‘휴이’의 대표 넘버 ‘Memphis Lives in Me’는 눈물샘을 자극해 코끝이 찡긋한다.

뮤지컬학과 입시생이라면 뻔한 뮤지컬 넘버보단 다채로운 인물들의 솔직한 감정을 담은 ‘멤피스’의 노래가 강력한 무기로 장착할 것이라고 감히 의심치 않는다.

◇ 앙상블이 선사하는 황홀한 ‘쇼타임’

‘멤피스’의 앙상블은 ‘갓상블’이 어떠한 존재인지 무대에서 증명한다. 주연 배우가 스토리의 중심이라면, 앙상블은 전체 스토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연결고리다.

작품의 화려한 향연은 앙상블로 인해 완성된다. 앙상블이 주연 배우만큼 무대를 책임진다. 앙상블만의 무대도 많아, 극의 서사를 극대화하는 인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앙상블이 주연 배우보다 돋보이기 힘들다고 하지만, ‘멤피스’에서는 다르다. ‘휴이’가 말하는 ‘돌멩이’, 즉 그의 분신과 같은 존재다. 터질듯한 성량과 화려한 춤사위가 작품의 한 배역으로서 무대를 끌어안는다. 그래서 앙상블 한 명 한 명을 보는 것 또한 작품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볼거리다.

흥이 폭발한 장면에서 갑자기 울컥하게 하는 것도 앙상블의 무대 덕분이다. ‘휴이’가 전한 흑인 음악을 통해 마음의 장벽을 깬 백인이 스스로 윌스트리트를 찾는 넘버 ‘Radio’ 장면은 신나고 흥겹다. 그런데 관객석 곳곳에서 눈물이 터진 관객을 발견한다. 음악으로 편견을 깬 백인, 그리고 이들을 친구로 받아준 흑인. 어쩌면 그 시대 멤피스에서 가장 상처받은 이들끼리 서로 잡은 치유의 손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펠리샤’를 떠나보낸 ‘휴이’가 멤피스에 남아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Memphis Lives in Me’에서는 앞선 신나고 방방 뛰던 무대를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그의 외로움을 어루만지며 진정으로 위로한다. 이때까지 걸어온 모든 감정이 복합적으로 융합되는 동시에 웅장한 스케일로 그를 감싸며 지난 시간을 정리한다.

직픔 속 앙상블은 음악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노래와 춤은 음악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휴이’와 ‘펠리샤’가 보여주지 못한 제3의 입장으로서 그 시대에 감추고 싶었던 뒷모습까지, 모든 순간을 대신 전한다.

◇ ‘천의 얼굴’ 휴이, 회전문 유혹하는 매력도 각양각색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휴이’지만, 도파민을 터뜨리는 에너자이저다. ‘중2병’보단 말을 막 시작해서 자기 의견을 확실히 내놓는 정신 사나운 5세 어린이 같다. 오죽하면 그의 어머니인 ‘글래디스’가 “(‘휴이’가) 죽으면 관 뚫고 나와 주둥이만 나불댈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휴이’가 상상 속 자식이라면 매일 버라이어티해서 재미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진짜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어디로 튈지 몰라 골치 아플 것 같다.

‘휴이’는 ‘독보적’이진 않지만, ‘독특한’ 인물이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건 확실하다. 꾸미지 않은 ‘휴이’를 통해 삶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다름’을 용기 있게 ‘같다’고 세상에 외친다. 이와 함께 겉으로만 치장한 돈과 명예보다 진정한 사랑과 우정, 꿈과 용기를 일깨워준다. 그의 음악을 향한 진심은 ‘진짜’ 부자가 누구인지 끄집어낸다.

이번 재연에서는 4명의 배우가 ‘휴이’를 연기한다. 초연보다 더욱 단단해져서 돌아온 각 배우의 색깔이 매력적이다. 능청스럽다가 어느 순간 ‘사랑꾼’ ‘남자’로 돌변한다. 배우별 특성에 따라 무대의 디테일이 다르니, 이 또한 회전문을 돌아야 할 이유다.

△ 위키더뮤지컬 이우진 기자가 소개하는 ‘박강현’

박강현은 초연 때보다 한층 더 자유롭고 능청스러운 ‘휴이’를 선보인다. 따뜻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모습 속에 숨겨진 단단한 내면을 통해, 휴이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인물임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특히 극 후반부로 갈수록 깊어지는 감정선은 초반의 밝고 경쾌한 모습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관객들에게 더욱 극적인 울림을 전한다. 다양한 템포와 장르의 넘버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가창을 소화하며 극의 흐름을 이끈다. 초연에 비해 발전된 댄스 실력 또한 인상적이다.

△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가 소개하는 ‘고은성’

이번 시즌 고은성의 ‘휴이’가 특별하게 와닿는다. 초연에서 자유분방하며 경계 없는 고은성 특유의 그루브와 끼가 매력으로 다가왔다. 재연에서는 ‘펠리샤’가 꿈을 향해 나가도록 놓아주고 내려놓은, 해탈한 듯한 ‘휴이’가 돋보인다.

△ 스포츠서울 표권향 기자가 소개하는 ‘정택운’

이번 재연에 새롭게 합류한 정택운에 대해, 공연 초반 뭔가 수줍은 ‘휴이’라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무대를 거듭하면서 완전히 ‘휴이’로 빙의했다. 아이돌 출신 ‘실력파’ 뮤지컬 배우의 계보를 잇고 있다. 바람에 몸을 맡긴 고무풍선 같다. 바지춤을 치켜올리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사부작거리며 빈틈없이 섬세한 연기를 펼친다. 상황별 감정을 담은 노래는 극의 몰입도를 더한다. 이젠 누가 뭐라 해도 어엿한 뮤지컬 배우로서 자리매김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다. 기대 이상의 감동을 그의 무대에서 느낄 수 있다.

△ 최승연 뮤지컬평론가가 소개하는 ‘이창섭’

‘멤피스’의 ‘휴이’는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실행력을 가진 인물이다. ‘휴이’의 매력은 이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수행하며, 그 과정에서 만난 모두를 가족으로 대한다는 점에 있다. 이창섭의 ‘휴이’는 자유롭고 사랑스럽게 자신의 매력을 무대에 펼쳐 놓는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치 모든 일이 해피엔딩으로 흘러갈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한편 눈과 귀가 즐겁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멤피스’는 오는 9월21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주 6일, 배우들은 셔터 촤라락 올리고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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