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한국과 일본 중심의 아시아 축구가 발전하고 있지만 세계 최정상의 경기력을 뽐내는 국가 역시 진화한다. 월드컵에서 ‘영원한 우승 후보’로 불리는 삼바군단 브라질만 봐도 느낄 수 있다.

‘원조 축구 황제’로 불린 고 펠레 시대의 브라질 축구는 개인 전술을 앞세운 화려한 기술로 세계 축구를 주름잡았다. 그러나 현대 축구의 전술 트렌드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개인 능력이 뛰어난 대륙 팀 대다수 실리적인 축구를 지향하는 시대다. 선결 조건엔 상대 약점을 공략하는 수준 높은 전술은 물론 피지컬과 정신력, 원 팀 의식까지 축구에 필요한 유·무형의 가치를 모두 담아야 한다.

지난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을 상대로 5골 화력쇼를 뽐낸 브라질은 이런 요건에 똑 들어맞는 퍼포먼스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단순히 볼 점유율을 높이면서 경기를 지배한 게 아니다. 세계 최고수가 모인 팀답게 초반 탐색 시간을 간소화한 뒤 한국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한국이 파이브백을 펼쳤지만 속도와 공간 커버가 상대적으로 더딘 지점을 두드렸다.

전반 13분이 대표적이다.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공을 잡은 미드필더 브루노 기마랑이스는 센터백 김주성과 윙백 이태석 사이 공간을 꿰뚫는 마법 같은 대각선 침투 패스를 보냈다. 이스테방이 절묘하게 빠져들어가 공을 따낸 뒤 선제골로 연결했다. 이날 한국은 왼쪽 수비 라인이 유독 고전했는데, 역습 상황도 아니고 수비 대형을 갖춘 상황에서 대각선 침투 패스가 나오리라곤 누구도 예상 못했다. 그야말로 ‘브라질의 클래스’다.

전반 41분 추가골 장면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페널티박스에 미드필더진까지 다수 숫자를 두고 있었는데 호드리구가 측면에서 들어온 패스를 뒤로 흘려 카세미루에게 줬다. 그가 다시 재빠르게 뒷공간을 파고든 호드리구에게 연결했다. 호드리구는 한국 수비가 가로막았으나 정교한 속임 동작에 이어 오른발 감아 차기 슛으로 마무리했다. 밀집 수비 파훼의 정석이다.

브라질은 후반에도 느슨하게 경기하지 않았다. 3골을 더 몰아쳤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챔피언’이라는 명확한 목표 아래 한 수 아래인 아시아팀과 2연전(한국·일본전)을 소중하게 치르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브라질의 진중한 경기 자세, 강한 압박, 높은 경기 몰입도에 한국은 주눅이 들어 제대로 된 압박조차 펼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는 장면이 잦았다. 경기력, 정신적 모두 완패한 경기다.

자만 없는 삼바군단의 경기 태도는 킥오프 전 ‘수장’ 카를로 안첼로티(이탈리아) 감독의 발언으로도 엿볼 수 있었다. AC밀란(이탈리아)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바이에른 뮌헨(독일) 등 빅클럽 팀을 두루 이끈 그는 “(월드컵까지 남은 기간) 지름길은 없다. 전략과 전술보다 더 중요한 건 선수가 경기에 임하는 태도”라며 “선수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있다. 자기가 최고 선수여서 월드컵을 우승하는 게 아니라 팀을 위해 하나 된 목표 의식을 가져야 우승한다는 생각을 지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타 플레이어가 많아도 자기중심적 사고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메시지다.

브라질 선수는 안첼로티 감독의 말대로 간절하게 뛰었다. 명성을 버렸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까지 얼마나 더 처절하게 준비하고 연구해야 하는지 느끼게 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