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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평양까지 어떻게 가?”
북한 출장을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같은 ‘코리아’ 평양 가는 방법이 가장 궁금했던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해 직항로를 통해 2000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휴전선을 넘어 육로로 갔다. 지금은 남·북 관계가 경색된 터라 그런 루트가 불가능하다. 갈 때와 올 때 모두 중국에서 하루를 숙박하는 긴 여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단과 취재진은 지난 2일 아침에 인천국제공항에 모여 베이징으로 갔다. 월요일인 다음 날 아침 대한축구협회 직원들이 베이징에 위치한 주중북한대사관 영사부를 찾아 방북자 리스트를 전달하고 북한 비자를 받았다. 이번 방북 일행 중엔 평양이나 개성 금강산 등을 갔다 온 ‘북한 유경험자’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그들도 북한 비자를 받자마자 신기한 듯 카메라로 찍고 난리도 아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예전엔 비자 없이 통일부에서 발급한 방북증명서만 갖고 제3국 경유 없이 북측을 다녀왔다고 한다. 이번엔 중국을 거쳐가다보니 북한 비자가 반드시 필요했다. 베이징 공항에서 평양으로 갈 땐 중국국제항공을 탔는데 티켓 발권 때 항공사 직원은 북한 비자 소지 여부를 반드시 물었다.
중국 등 다른 나라 비자는 여권에 붙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북한 비자는 별지로 나왔다. 출입국 관련 도장은 별지비자 뒤에 찍혔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빠져나올 때 북한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이 비자를 회수해서 남측 인사 여권에 방북 흔적이 남지 않게 했다. 베이징 공항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북한 비자를 찍어 기념한 이유다. 평양 개선문이 배경으로 그려진 북한 비자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국적이었다. ‘남조선’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중국에서 하루 체류하다보니 방송장비 반입 등 몇가지 고민들이 취재진에게 있었다. 방송사들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수백만원의 보증금을 위안화로 바꿔 갖고 가기도 했다. 다행히 외교부를 통해 베이징 주중대사관, 심양 영사관(평양에서 나올 때)에서 문제의 소지가 없도록 도와줬다. 많은 도움을 준 외교부에 감사를 전한다. 선수단과 취재진 전원이 휴대폰을 베이징 대사관 직원에게 맡기는 것을 끝으로 평양에 가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서해를 통과하는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중국에서 북한으로 가는 비행기는 거의 대부분 서해를 통과하지 않고 랴오닝성까지 올라간 뒤 압록강 쪽으로 기수를 내린 다음 순안공항에 착륙한다고 한다. 1시간 30분이나 연착된 끝에 베이징 공항을 출발한 선수와 취재진은 어느 샌가 ‘여기가 중국인가, 북한인가’란 생각으로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도가 낮아지고 평양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들면서 놀란 것은 비행기 아래 쪽에 있는 ‘민둥산’이었다. 분명 산처럼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는데 나무는 하나도 없고 황토색 흙만 보였다. 공항에 다가갈수록 파릇파릇한 색깔이 드러났으나 숲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였다. 순안공항에서 평양시내까지 오는 버스 안에서도 곧잘 발견한 것이 이제 막 심은 어린 나무였다. 그 만큼 벌거벗은 산과 언덕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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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안공항하면 생각나는 사진이 있다. 지난 2008년 2월 뉴욕 필하모닉이 평양 공연을 위해 도착한 뒤, 트랙에 내려 김일성 대형 초상화가 솟은 터미널을 배경으로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런 사진이 불가능하다. 2015년 하반기 기존 청사가 철거되고 국내선과 국제선으로 나뉜 두 개의 터미널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비행기와 터미널을 이어주는 연결통로도 갖춰져 있다. 새 청사는 2년도 안 되어 외관이나 시설은 손색이 없었다. 다만 규모는 작아 울산이나 여수공항 등 한국의 소형 공항과 비슷했다. 국제선 청사의 게이트도 3개였다. 까다롭다는 북측의 짐 검사도 무난하게 마친 취재단이 입국장을 빠져나와 마주한 것은 청사 내 좌석에 앉아 남측 사람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수십여명의 북한 사람들이었다. 거의 부동자세로 앉은 그들은 아무 소리 없이 취재진과 여자축구대표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밝은 표정의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참사들과 두 대의 미니버스에 나눠탄 취재진은 평양의 명소들을 재빠르게 돌면서 오후 7시가 다 되어 양각도국제호텔에 도착했다. 기억에 남는 곳은 ‘김일성 광장’이었다. 밝은 조명 아래 웅장한 건물들이 즐비했고, 광장엔 흰 모자를 쓴 사람들이 늦은 시간까지 몰려 있었다. 베이징에서 하루 체류할 때 천안문 광장을 다녀왔기 때문에 ‘김일성 광장’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는 했다. 이후 여러 번 방문 요청에도 불구하고 광장을 다시 찾진 못했다. 살면서 한 번 더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가고 싶은 곳이 광장이다.
silv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