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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통일시대의 남북 체육교류는 다른 분야에 견줘 더 활발해질 게 틀림없다. 체육분야는 남북의 역사 인식에서 그다지 이견이 없고 역사 경험에서도 공통의 정서가 많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남북 체육은 출발점이 같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0년 창립한 조선체육회가 그 모태다. 남북 체육이 뿌리가 같은 한 집안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남북이 체육에 있어서 만큼은 역사적 정통성을 다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정서적 일체감 또한 남북 체육교류에서 더할 나위없는 자산이다. 조선체육회의 창립이 1920년이라는 사실은 이 단체의 성격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최초의 민족적 항거인 3·1운동 이듬해에 조선체육회가 창립된 사실은 이 단체가 단순한 체육단체가 아니라 체육을 통한 민족계몽과 독립운동을 견지한 사회단체의 성격이 짙다는 점을 시사한다. 남북은 조선체육회라는 단체를 통해 뚜렷한 독립의식을 견지하면서 일체감있는 민족정서를 공유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체육은 분단이후에도 한반도의 정치적 경색국면을 가장 앞장서 깨트린 전위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구성을 시작으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 공동입장, 그리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등 체육은 늘 남북교류의 선두에 섰다. 이는 남북체육을 관통하는 역사적 정통성과 축적된 경험 덕분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체육 교류는 다른 분야에 견줘 한결 손쉽게 진행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남북체육 교류 움직임은 과연 어떻게 내다봐야 할까. 시대를 반영하는 사회 움직임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너무도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반응이 주를 이뤄 한 번쯤 호흡을 가다듬어 보자고 조언하고 싶다. 눈앞에 닥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은 솔직히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 시기적으로 촉박한 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을 고집하기 보다는 평화의 가치 구현이라는 상징성에 초점을 맞추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아시아 스포츠 강호인 한국이 무리한 엔트리 확대 등을 요구하는 것도 별로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북체육이 아시안게임보다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는 2020 도쿄올림픽을 겨냥해 알찬 청사진을 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은 조선체육회 출범 100주년을 맞는 의미있는 해다. 조선체육회가 민족계몽과 독립운동을 위해 태동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 창립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의 심장부에 올림픽 단일팀을 파견하는 건 그야말로 가슴 뻥 뚫리는 청량제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적 정통성을 공유하고 있는 남북체육은 앞으로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을 이뤄낼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명심해야 할 건 한 가지다. 통일시대의 체육교류는 감성이 아닌 이성의 붓으로 그리는 꼼꼼한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