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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공부하는 운동선수’는 구시대 엘리트체육의 종언을 선언하는 울림있는 캐치플레이즈다. 한국 체육의 낡은 패러다임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선 더 이상 화석이 돼버린 과거의 패러다임에 얽매이거나 집착해서는 곤란하다. 하기야 소수의 엘리트에 집중하는 압축성장시대의 체육 국가주의는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선 그 공을 폄훼하기는 어렵지만 소수의 성공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양산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바람직한 패러다임으로 기능할 수는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최근 체육현장에서 터져나오는 볼멘소리는 무엇인가. “이러다가는 한국 체육은 망한다. 공부할 거 다하고 어떻게 경기력을 끌어올리느냐.” 체육 지도자들의 하소연은 한편으로는 타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몇 가지 명백한 오류가 있다. 체육이 더 이상 경기력에 매몰되서는 안된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며 두 번째는 시대는 변했는데 지도자들의 의식과 문화는 변하지 않고 과거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지도자들의 볼멘소리는 특히 대학 스포츠에서 심하다. 엄격한 ‘C0룰’을 적용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선수들의 대회 출전을 불허하는 제도적 장치 때문에 선수들의 훈련 시간이 부족해졌고 이것이 경기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대학 지도자들의 푸념이다. 그렇다고 역사의 시계추를 되돌리는 건 무의미하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한국 체육의 시대정신으로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학원 스포츠, 특히 대학 스포츠 지도자들에게 이 참에 꼭하고 싶은 말이 있어 펜을 들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로 대변되는 한국 체육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당당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한국 체육이 새로운 지평을 열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엘리트에 편중된 과거의 체육 국가주의는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통합된 새로운 체육 생태계에선 더 이상 맞지 않는 논리다. 경기력 향상을 등한시하는 것도 지도자의 책무가 아니다. 그렇다면 바뀐 패러다임에서 지도자는 과연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세상이 바뀌고 체육을 둘러싼 환경이 변했는데도 지도자들이 낡은 습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운동만 하던 선수에서 ‘공부하는 선수’로 변신한 이들에게 최적의 훈련환경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본 지도자는 과연 있었는지 되묻고 싶다.

볼멘소리가 가장 심한 대학 스포츠 지도자들은 모든 걸 깨끗이 지우고 새롭게 리셋(Reset)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훈련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경기력 저하를 호소하는 지도자들은 ‘익숙함으로부터 탈피’를 시도하는 게 마땅하다. 단체 종목에서 모두가 함께 모여 훈련하는 과거의 판에 박힌 형식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함께 모여 훈련하는 것을 최소화하며 공강(空講)시간에 선수와 지도자가 ‘맨투맨’으로 붙어 씨름하는 새로운 훈련 형식이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 물론 오랜 습관을 바꾸는 일인 만큼 많은 힘이 들 것이다. 모든 선수들을 개인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고된 노동이 불가피하겠지만 이 또한 진보를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짐이다.

훈련 방식 역시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게 옳다. 과거의 훈련방식은 효율성과 몰입도가 떨어졌다. 경기 시작 몇시간 전부터 운동장과 코트에서 얼쩡대며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고 한참 긴 워밍업으로 느슨하게 훈련했던 게 사실이다.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시대적 트렌드로 뿌리내리면 시간은 금쪽같이 귀중해진다. 따라서 이러한 비효율적인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워밍업 등은 스스로가 미리 수행하고 단체훈련의 집중도를 높이는 쪽으로 훈련 방식을 바꾸면 경기력 저하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감히 자신한다.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은 대학 스포츠의 귀감이 되는 미국에서 이미 시도하고 있는 방식이다. 공강시간에 저마다 코치들을 찾아 맨투맨식 훈련으로 자신의 미션을 체크하면서 ‘공부하는 운동선수’로서 제 길을 꿋꿋이 걷고 있다.

시대는 변했다. 과거의 향수에 젖어 바뀐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건 게으른 자의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물론 익숙함으로부터 탈피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진보는 늘 알을 깨는 아픔 속에 찾아진다는 진리를 가슴 속에 새긴다면 익숙한 편안함은 충분히 떨쳐낼 수 있다. 지도자의 의식전환과 스포츠 문화의 파괴적 혁신, 기로에 선 대학 스포츠에 요구되는 두 가지 숙제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